퓨마와 동물원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1537330348257.png


내 말랑거리는 발바닥으로 느꼈어
바라만 보던 그 언덕의 거친 흙먼지를,
내 어미의 어미의 어미가 달리며 걸으며 움켜쥐던 그 대지의 힘을

내 둔해진 코털로 맡았지
시멘트와 쇠창살 사이로 가느다랗던 평화로운 자유의 향기를,
등에 비비며 두 뺨에 비비어 나를 깨워주는 초원의 기운을

흐릿하던 내 눈으로 보았어
울타리 밖 먼 하늘 초록 숲 신기루를,
달리고 오르며 꿈틀거리던 내 어미의 힘찬 근육을

내일에도 다가 올 어제 같은 오늘
살아감을 구걸하는 죽은 닭의 차가운 피,
창살에 무뎌지는 갈라진 발톱,
더 이상 내 아이에겐 줄 수 없어

난 한 걸음을 내디뎠어
그저 나는 퓨마이고 싶었어
목걸이를 한 고양이가 아닌
초원을 달려, 나무를 찍어 오르는
그저 나는 퓨마이고 싶었어

이 창살 밖, 저 언덕 너머의
그 날의 그 초원을 향해
난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었어

눈은 흐려오고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에 힘은 풀려도
아이야 우리는 퓨마란다
아이야 이제 우린 초원을 달린단다

퓨마와 동물원 / 김경근
----------------------------

남북정상회담의 반가운 뉴스 와중에, 대전의 어느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의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이런저런 사유로 문이 열리고, 퓨마는 걸어 나오고, 수색하고 마취하고, 결국엔 사살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생각해 봅니다
그 퓨마의 걸음은 탈출인지, 산책인 건지,
퓨마의 발걸음이 죽을 만큼 위험한 방향이었던 건지.
어쩌면 퓨마는 자기의 나고 자란 그곳을 향해
자연스레 그의 걸음을 걸었던 건 아닌지,
탈출한 퓨마의 위험을 탓하기 이전에
애초부터 초원을 달리던 퓨마를 그 작은 공간에 밀어 넣은 우리의 이기심은 없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동물원이라는 곳을 가 본지도 꽤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던 시절, 당연한 듯 아이와 함께 가서 이런저런 동물들을 구경시키며 보여주며 지내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그런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의 눈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했어요.
동물원의 효능과 폐해까지 논쟁하진 않더라도, 우리에 가둬진 그 동물들은 어쩌면 인간들의 가장 원시적인 폭력성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하긴 우리 사람들조차, 흑인을 전시하던 미국인, 조선인을 가둬 전시하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보면, 동물을 동물원에 넣는 건 우리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내재된 폭력성을 대행하는 몸짓일까요

안타까운 퓨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그 퓨마의 어제의 한 시간, 한 걸음은, 그가 생애에 가장 바라던 소중한 한 걸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퓨마의 그 순간을 같이 생각해보며 한 글자 얹고 퓨마도 그려봅니다

세상 모든 생명들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이전 23화커피 한잔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