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 도종환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도종환 -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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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렇게 오는 봄만이 축복은 아닙니다.
그렇게 피는 꽃만이 축복은 아닙니다.
시절의 담금질 속에서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입니다.
매 순간이 축복입니다.
뒤돌아보면 어느 누구의 지난 세월 평탄하기만 했을까요
어느 누구 하나 눈물 흘리지 않은 청춘이 있었을까요
그렇게 견디며 살아내며
우린 또 오늘 이렇게
물결치고 있습니다.
우린 또 오늘 이렇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축복입니다.
그 모든 순간이 행복입니다.
모든 이의 봄날 매화꽃 끝에
평화가 가득하기만을 기원해 봅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