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동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저는 지금 동거 중입니다.

벌써 2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시작이 언제인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상대방 모습을 본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지붕 아래 한 방에서 벽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기묘한 동거 중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3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며 방 도배를 새로 했습니다.

도배하다 보니 벽으로 이전 거주자가 살며 설치하느라 뚫었던 에어컨 호스 구멍이 나 있더군요. 어찌어찌 작업하시는 분들이 구멍을 막고 도배를 마무리했었죠.

그러고 작년 겨울 어느 날, 집에서 이상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온 방안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구조의 집 지붕에 쥐가 있을 리는 없고 말이지요.

우여곡절 끝에 알아보니 새였습니다.

벽에 난 그 작은 구멍에 새가 한 마리 추위를 피해 숨어들었던 것입니다. 밖으론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는지 몰라도 그곳에서 추위를 피하더군요. 아마 그 구멍에 맞는 작은 새인 듯합니다.

그렇게 부스럭거리는 기척을 내며 겨울을 버티고, 날 좋을 때는 안 들리다가 올해 또 추워진 어느 날부터 부스럭 부스럭거립니다.


이젠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갑습니다

매년 같은 녀석인지 다른 녀석인지 본 적도 없지만,

추운 겨울밤, 계절을 견디며 넘기며 서로의 부스럭거리는 기척으로 위안이 되는, 살아 있음에 견디고 있음에 서로 희망을 주는, 그런 기묘한 동거자가 되어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오는 밤이면, 좀 더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길게 들립니다.

어찌해줄 방법은 없고, 그저 벽지를 뚫고 들어오질 않길 바랄 뿐이죠.


그렇게 얼굴 모르는 새와의 동거는 올해도 계속됩니다.

아침이면 나보다 일찍 깨서 어서 일어나라 부스럭거립니다. 부산한 동거인이지만, 화창한 낮에 하늘을 나는 저 새들 중 한 마리이겠지요. 무단 입주한 동거인이지만,

이 겨울을 견디고 새봄의 기운에 날개를 키워, 다음 겨울에 또 찾아오길, 매년 겨울 인사를 나누길 기대해 볼 뿐입니다.


세상 모든 동거인들의 안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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