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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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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나려 쌓였던 눈도 이제는 희끗희끗 골목 한구석 어두운 응달에만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겨울은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듯합니다.


다시 당나귀에 주섬주섬 사랑을 싣고

소주잔에 소복히 얹힌 눈을 같이 털어 마시며

여전히 뜨거운 내 가슴에 나타샤를 담고

저 북쪽 어느 마을 작은 *마가리를 찾아

겨울은 또 그렇게 길을 떠날듯합니다.


혹한보다 더 혹독한 세상,

져서 떠나는 게 아니라 더러워 버린다며

그래도 내겐 사랑이라도 있다며

겨울은 그리 주섬주섬 짐을 쌉니다


그렇게 겨울은 눈을 데리고 당나귀를 타고

나타샤와 함께 떠나는 계절입니다

다시 돌아올 모두의 나타샤를 기억하며

겨울을 배웅해 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마가리 : 오막살이의 평북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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