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으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백내장 수술을 한 후론 웬만한 곳은 안경을 쓰지 않고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 편합니다. 눈도 피로하지 않고

자연의 색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기분도 좋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거나 폰을 보거나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안경을 쓰거나 돋보기를 써야 합니다

나도 아내도 각자의 돋보기를 꺼내놓고 있습니다. 책상 근처에 각자의 자리에 두었다가 책이나 작은 글자를 볼 일이 있을 때 각자 안경을 꺼내 쓰곤 하죠.

가끔 내 돋보기를 못 찾을 때 급한 대로 아내의 돋보기를 써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 눈에 맞지않아 이내 벗어냅니다. 서로의 눈에 맞지 않는 도수인 게죠.

그렇게 나만의 도수가, 나만의 프레임이 필요하게 됩니다


사람 관계도 그럴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만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 이들만 보게 됩니다.

살아오며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프레임으로 사람을 재고 넣고 빼버립니다.

때론 능동적으로 프레임 안에 넣기도 하고,

때론 수동적으로 프레임에 들어오는 이만 봅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가요

프레임 안에 있던 이들이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고

프레임 밖으로 반쯤 걸쳐져 있는 게 보이기도 합니다

혹은 내 프레임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변한 사람들 모습에 사뭇 실망하며 당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언제나 한결같은데.

사람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내 안경이,

나의 프레임이 잘못되었던 건 아닌가 하고 먈이지요


가만히 안경을 벗어봅니다.

잠시 흐릿했던 시선이 이내 주변에 적응됩니다

나도 모르게 프레임 속에 가두었던

그 많은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프레임 없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세상은 그대로 자연이 됩니다

세상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단지 바뀌는 건

그 세상을 보는,

그 사람들을 보는,

내 눈의 프레임이었나 봅니다.


안경을 벗고 피곤한 눈을 비벼보는 아침입니다

프레임 없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마음들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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