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웃는 얼굴의 친구야 늘 밝은 모습의 친구야 늘 괜찮아 보이고 좋아 보이고 강해 보이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가 나는 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 하고 속말 하고 싶어도 말도 못하고
그냥 내려 오니라 친구야
아무도 없는 언덕에서 악 한번 써불고 키 큰 나무에 기 대서 맘껏 울어불고 들꽃 위에 드러누워 후련하게 쏟아뿌러라 옷에 흙 좀 묻으면 어떻나 얼굴 좀 타고 피부 좀 긁히면 어떻나 돈 좀 못 벌고 힘 좀 밀리면 어떻나 두 발을 흙에 푹 채우는 게 만족아니냐
힘들고 아플 땐 그냥 내려 오니라 친구야
- 박노해 / 그냥 내려 오니라 ============================
가을이 후다닥 뛰어갑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 겨울빛이 느껴지는 건 성급한 마음이겠지요
가슴 아픈 이런저런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청춘의 절망은 청춘의 불안은 감히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 무게인 듯합니다.
그저 쉬운 참견으로 아픈 무게를 감당하라느니 가슴을 펴고 하늘을 보라느니 세치의 말 얹음이 부끄럽습니다
그저 눈이 시리게 뽀얀 오늘의 하늘 아래 박노해 시인의 '그냥 내려오니라' 한 구절을 그려보며 청춘들에게 물려준 삶의 큰 무게에 대한 미안함과, 보이지 않은 뿌연 하늘의 불안 아래에서,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는 대책 없는 부끄러운 내 두 손을 내려다보며, 세상 모든 아픔들의 위안과 안식을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