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기주 수필 - #사랑은내시간을기꺼이내어주는것이다 중 ===================== 반년을 넘게 이어지는 어수선한 역병의 소식에 알게 모르게 마음엔 화가 쌓입니다. 조금 나아져서 잘 넘기나 할때마다, 어이없는 무리들의 무지한 행동과 뻔뻔한 언사에 쌓였던 화가 부르륵 일어납니다.
마음을 달래려 꺼낸 책에 이누이트 족의 화풀이법이 나옵니다. 그들의 현명함에 감탄을 합니다. 어쩌면 지금 내 속에 끓고 있는 화가, 자칫 나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막대기 하나 들고 나서야 겠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이 화가 난 상태로는 손에 들린 작대기로 무지한 이들이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꾸욱 참고 멀리 걸어야 겠습니다. 그 어느 곳, 내 마음 차분해진 그곳에 막대기 하나 조용히 꽂고 와야겠습니다. 그 자리에 미움도 묻고, 원망도 묻고, 서러움도 묻은 후, 가벼운 빈손으로 돌아와야 보렵니다. 나를 위해서, 내 주변의 따스한 마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