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 한 해의 끝입니다. 어느샌가 두꺼운 외투가 더 반가워집니다. 목도리에 몸을 깊이 파묻고 한 해의 끝길을 걷습니다.
이젠 길이 내려서라 합니다 올 한해 그리 지난하게 달려 온 길끝에 이제 잠시 등불앞에 가만히 앉아보라 합니다. 달려 온 길을 지나 온 길을 가만히 돌아보라 합니다 달려온 그 동안 얼마나 내 어깨엔 힘이 들어갔는지 지나 온 그동안 독같은 시간을 얼마나 견뎌왔는지
길은 그렇게 이야기 해 줍니다 따스한 등불 아래서 심지를 한 칸 올리며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를 이야기 합니다.
나의 등불도 심지를 돋아 한 해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어정어정 보낸 시간인지 허겁지겁 달려든 시간인지 가만히 등불 앞에서 길을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