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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Nov 11. 2020

나(름) 혼자 (잘 해먹고) 산다는 것

딸, 밥 잘 챙겨먹고 있지?

건강 상의 이유로 급하게 첫 자취를 하게 되었다. 소꿉놀이같이 작고 적은 살림을 가져다 풀어놓았는데도 할 일이 먼지처럼 기어나온다.


매일 쓸고 닦진 못하지만, 주에 한 번은 바닥과 침대의 먼지를 쓸어낸다. 싱크대와 세면대는 쓴 뒤 바로 닦아낸다. 샤워부스는 사용 후 남은 습기와 물기를 와이퍼로 닦아내고, 바닥은 주에 한번 쓰레잘비로 쓸어 머리카락을 모아 버린다.

주에 한 번, 세탁망에 작은 빨래들을 모아 돌린다. 세탁 세제 향이 작은 방에 가득 찰 때의 나른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북향에다 옆 건물로 가로막혀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이지만, 집을 건조하게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 모든 노력은 다가올 여름을 위해서다. 향초로 버텨야 할 계절일 것이다. 그 전에 몸에 청소하는 버릇을 배어 놔야 곰팡이와 벌레 따위에 집을 점령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느지막히 피하던 일이 있었으니 바로 요리와 식사다. 음식물쓰레기와 설거지거리, 음식 냄새까지 모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본가에서 본 수면양말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가 다녀갔나? 내가 가져왔었나? 생각하며 냉장고를 여니 작은 밑반찬과 잡곡밥이 든 밀폐용기가 도란도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그날 이후로 퇴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점심에 먹고 남은 시래깃국을 싸와 저녁을 만들기도 하고,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한 어묵을 한 봉지 사서 미역귀를 넣고 정체 불명의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쉼없이 쌓이던 본가의 설거지거리를 볼 땐 설거지처럼 보람없는 일도 없는 줄 알았더니, 깨끗하게 닦아 포개어놓은 내 몫의 단촐한 그릇 궁둥이를 보니 흐뭇함이 절로 올라온다.

하루는 혼자도 잘 해 먹고 사는 모습이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여 가족 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가족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혼자서도 나름 잘 해내고 있다고 알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올리고 보니 시래깃국 빼고 밑반찬과 밥은 다 엄마가 해다 준 것이었다. 심지어 시래깃국도 점심에 먹고 남은 것을 싸온 것이다. 국에 잡곡밥을 넣고 물만 좀 더 부어 죽으로 끓여놓았을 뿐이었다.


몰랐다. 집안일은 골키퍼의 임무와 비슷하다. 잘 하면 티가 안 나고, 조금만 빈틈이 생겨도 바로 티가 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종일 분주하다.

우리 엄마는 분주한 골키퍼였구나. 내가 해낸 줄 알았던 이 작은 일들의 뒤에도 우리 엄마의 손길과 시간이 숨어있었다. 애시당초 청소도 설거지도 요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하려면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대화 내용을 물끄럼 읽고 있자니 꼭 말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동시에 내가 있는 이 작은 집이 얼마나 조용하고 휑뎅그렁하게 놓였는지도 알게 된다.

그냥 집을 사람 사는 진짜 집으로 만드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집을 데우고, 공기를 통하게 하고, 사람 손길을 닿게 하는 일, 앉고 눕고 서고 걷고 말하고 잠들고 숨쉬며 집에 사람의 기척과 온기로 빈틈을 채우는 일이다.


오늘도 빈틈을 발견한다. 우리 엄마가, 아빠가, 언니와 동생이 함께 채우고 있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빈틈을 이 작은 집에서 문득, 문득 발견한다.

어느 날엔 내 몫의 빈틈은 스스로 메우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가족 누군가에게 내가 빈틈을 메워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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