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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Nov 14. 2020

우리집에서 냄새가 난다.

그 집의 냄새는 그 집의 시간을 담고있다.

집마다 냄새가 다르게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집의 냄새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을 담고있다. 집안에서 보낸 시간들이 켜켜이 냄새로 쌓여 집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집에서는 늘 김치찌개, 된장찌개같은 찌개 냄새, 반찬 냄새가 났다. 김장이나 간장 조림, 장아찌라도 한 날엔 그 냄새도 대단했다.


향기에 조금씩 관심이 생긴 10대 후반부터 그 냄새가 너무 촌스럽고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아하고, 생활과 전혀 관련없는 낭만적인 향기가 나에게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뛰드하우스나 더페이스샵 같은 로드샵의 저렴한 퍼퓸 바디 미스트 따위를 사다가 거의 샤워를 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있다.

직장인이 된 뒤에 첫 퇴직금의 일부를 떼어 20만 원 상당의 향수를 샀다. 르 라보의 상탈이었다. 가죽과 흙, 풀과 나무 속살 내음이 섞인 독특한 매력의 향수였다. (다만 살에 뿌리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죽 향이 진하게 올라와, 옷에만 뿌리고 있다.)


처음 자취를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도 " 집의 "이었다.  집의 냄새는 내가 스스로 결정해보겠다는 생각에 내심 들뜨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자취집의 문을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낯선 냄새였다. 나를 환영하지 않는  같은,  공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냄새.

그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집에서 지내는 날을 거듭해 가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청소하고, 쓸고 닦고, 좋아하는 편백수를 뿌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다.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빗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렸다. 퇴근 후엔 조금 지쳐도 식사를 준비해 그릇을 채우고 비웠다.

그런 일상을 쌓아가며 어느 날 퇴근하고 문을 열었을 때, 마침내 내 집의 냄새가 나를 환영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건 내 일상의 냄새였다. 처음 자취하면서 기획했던 내 머릿속 비일상의 향과는 다른 것이었고, 본가와도 또 다른 새로운 것이었지만 내가 만들어낸 내 집의 냄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본가에 돌아온 금요일 밤, 우리집의 냄새가 먼저 나를 반긴다. 한없이 다정하고 오래도록 푸근한 일상의 냄새다. 오늘 저녁은 꽁치김치찌개, 내일의 김장을 준비하는 매콤하고 짭짜름한 액젓과 김치양념 냄새. 화분 속에서 풀과 흙이 뒤섞인 냄새,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의 냄새. 나의 집과는 또 다른 우리집의 냄새다. 집에 왔다는 감각이 마음의 긴장을 녹여 없앤다.

언제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의 냄새가 두 개나 생겼다. 집마다 다른 환영의 냄새처럼, 우리집에선 늘 나를 품는 냄새가 난다. 그 집의 냄새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야만 만들 수 있는 냄새다. 이제는 철없는 부끄러움 대신 따스한 고마움이 들어찼다.

토요일 이른 오후, 새로 사 온 드립백을 뜯어 커피를 내렸다. 한쪽에선 김장 준비로 바쁜데, 나는 회복기라는 이유로 김장을 면제받고 속편히 커피나 내려 마시고 있다. 김장에 커피라니,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그게 진짜 우리의 일상이다. 온갖 냄새가 뒤죽박죽 섞여 세상에 하나뿐인 냄새로 나를 환영하는 우리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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