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카시마(小値賀)로
카시라카지마천주당 답사를 마치고 셔틀버스 주차장으로 돌아와 대기중인 택시를 타고 아리카와 페리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안내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스즈키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대기하고 있던 예약 택시를 탔습니다. ‘덕분에 좋은 여행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가 마지막 감사 인사였습니다. 택시로 이동중 성지 순례 여행객이 많은지 기사는 카시라카지마 지역 기독교에 관련한 설명을 해줍니다. 신카미고토에만 33개에 이르는 교회가 있다는 설명 그대로 이동중 차창 밖 곳곳에 교회가 보입니다. 서울의 한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숫자를 훨씬 능가해 보입니다. 일본에 이런 고장이 있다니요!
아리카와 페리터미널은 깔끔한데다 규모도 큽니다. 내부에 고래 박물관을 비롯한 전시실이 있고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동상도 있습니다. 신카미고토에 교회가 많아 ‘신카미고토정 교회군’이란 이름으로 대형 지도에 교회 이름과 함께 위치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요금이 1,050엔이라 들었는데 한참을 갑니다. 출발한지 한시간이 되도록 쓰와자키津和崎는 나오지 않아 내심 ‘이 정도 거리면 적어도 15,000엔은 족히 나오겠군’ 하는 걱정어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터기는 없습니다. 혹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예상치 못한 지출도 지출이지만 시간에나 맞출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마치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면서 ‘성지 답사중이라니 이 교회만큼은 꼭 보여주고 싶다’며 도로변에 보이는 아오사가우라靑砂浦교회에 정차합니다. 신카미고토 방문객에게 자신이 꼭 추천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테츠카와 요스케가 설계한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의 교회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2개 구성 자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1910년 준공되어 벽돌 건물로는 초기에 지어져 이후 고토열도의 벽돌 교회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당은 닫혀 있어 내부는 보지 못했습니다. 예배당 안에 들어가 보려면 사전 신청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출발한 택시는 드디어 목적지 쓰와자키의 해상택시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아리카와 페리터미널에서 교통 체증도 없이 한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먼 거리인데 요금은 들었던 대로 1,050엔입니다.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이 표정에 나타났는지 기사는 ‘신카미고토정 협정가로 인당 1,050엔’이라고 합니다. 정원 4명이 한 차를 타면 4,200엔이라는 예까지 들어줍니다. 사실 이 마저도 저렴합니다.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지자체인 신카미고토정에서 보조를 해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요금입니다. 아무리 적게 나와도 최소 15,000엔은 족히 나올 거리를 특별 요금제를 적용하니 여행자에게는 큰 도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쓰와자키는 오지카항과 연결되는 나카토리시마의 최북단 선착장으로, 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의 북쪽 끝에 있으니 아리카와항에서는 멀어도 오히려 바다 건너 오지카항까지는 가까운 곳입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강하게 부는 바람속에 흔들리는 작은 배 한척 위에서 무척이나 강인해 보이는 선장이 (이날은 해상택시 기사) 부지런히 로프를 정리하며 출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흩뿌립니다. 바람도 세찹니다. 관광안내소, 택시 기사, 해상택시 기사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여 효율적인 연계 체제를 갖추어 놓았을 것입니다. 태풍이 몰고 온 세찬 비바람과 높은 파도, 하지만 이런 악천후 속 운명을 선장과 함께 작은 배에 맡겨야 합니다. 바람이 너무 센 탓인지 바닷가에 그 흔한 갈매기조차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배에 올랐습니다. 반지하방 같은 선실에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승선객은 필자 단 한사람뿐입니다. 정박중인데도 배는 심하게 흔들립니다. 뱃일이 힘들어서인지 선실 한켠에 됫병 소주가 있습니다. 한국의 어선에도 소주 됫병이 필수로 있던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좀 무섭게 보이는, 하지만 전형적인 바다 사나이로 보이는 선장은 거침없이 배를 몰고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비바람은 더욱 강해집니다. 얼마나 배가 상하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지 벽에 붙은 철봉을 생명줄처럼 두손으로 꼭 움켜쥘 수밖에 없습니다. 어깨와 손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꼭 붙잡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선장말로는 25분 정도 걸린다는데 25분이 그리도 긴 시간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요동치는 배로 선실내에 놓아둔 여행 가방도 덩달아 이리저리 사정없이 춤을 춥니다. 몸이 휘청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관실을 흘깃 보니 선장은 담배까지 피워가며 여유있게 키를 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급기야 뱃속이 울렁거리며 멀미 기운이 올라옵니다. 몇해전 부관釜関페리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下関로 갈 때 배 멀미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다시는 일본에 배는 절대 타고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해상택시는 요란한 기관 소리를 내며 세찬 파도에 몸을 맡기고 힘차게 나아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이카이西海 해상국립공원을 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고토열도 전체가 사이카이 해상국립공원 지역입니다. 가는 길에 섬들이 꾸준히 보입니다. 큰 섬, 작은 섬, 바위섬과 기암 괴석이 하늘과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냅니다. 태풍으로 잔뜩 흐려있는 하늘은 또다른 감흥을 연출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항해는 정말 25분만에 바다를 건너 오지카 페리터미널에 도착하며 끝이 났습니다. 하선하여 땅을 밟자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옵니니다. 약정가 1,050엔을 지불했습니다. 쓰와자키까지의 택시비, 오지카까지의 해상택시비가 각각 1,050엔으로 너무 싸서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필자를 내려준 해상택시는 주저함 없이 다시 거친 바다를 뚫고 온 길을 되돌아 쓰야자키로 향했습니다. 첫 해상택시 승선 경험은 몹시도 힘든 경험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면 또 타야 하겠지만 정말 이 날을 생각하면 해상택시는 다시 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오지카시마는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고생의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며 나루시마에서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오지카시마의 땅을 밟았습니다.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