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라카지마천주당 (頭ヶ島天主堂)
아리카와有川 페리터미널에서 카시라카지마천주당頭ヶ島天主堂은 택시로 다녀 오기로 했습니다. 환승 주차장과 교회를 오가는 셔틀버스 시간표는 기사가 모두 외우고 있는듯 셔틀버스 출발 5분전 환승 주차장으로 데려다 줍니다. 카시라카지마천주당은 와카마쓰若松 페리터미널 오른편 카스라카지마頭ヶ島의 해안가에 위치합니다. 고토열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성 자산인 히사가시마의 큐쿄린교회, 나루시마의 에가미교회, 그리고 이 카시라카지마천주당 모두 해안가에 위치합니다.
카시라카지마천주당은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로 천주당 건물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고(古) 교회와 마찬가지로 키리시탄의 공동 묘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사택으로 사용되었음직한 별채는 자료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관람객과 같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교회를 답사했습니다. 외관 촬영은 문제가 없으나 내부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개별 관람은 허락되지 않으며 반드시 해설사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카시라카지마에는 4개의 잠복 키리시탄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마토마리浜泊, 시라하마白浜, 타지리田尻, 후쿠우라福浦 마을이 그곳입니다. 카시라카대교로 연결되는 나카토리시마의 토모스미友住 마을까지 합하면 5개가 됩니다. 큐슈 본섬의 나가사키 소토메, 오무라의 잠복 키리시탄들이 카시라카지마로 들어와 그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섬의 채석장에서 채굴된 사암을 이용하여 카스라카지마천주당을 지었습니다. 화강암인줄 알았던 벽돌은 사암이었습니다.
카시라카지마천주당과 잠복 키리시탄 마을이 있는 카시라카지마는 나카토리시마과 떨어져 있는 별개의 섬입니다.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카시라카대교로 연결되어 왕래는 용이합니다. 아리카와 페리터미널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립니다. 아리카와 페리터미널은 나가사키와 사세보로 연결되는 정기 여객선이 있어 내지 연결이 원활한 편입니다. 신카미고토는 정町 단위의 행정 구역이지만 고토시市 후쿠에에에 비해 좀 더 활기차게 보였습니다.
카시라카지마교회는 1910년 오사키신부의 주도로 이곳 신카미고토 출신인 테츠카와 요스케가 설계한 석조 건물입니다. 건축 자금난으로 인해 두번의 공사 중단을 거쳐 1919년 완공되었습니다.
화강암으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건물은 카시라카지마에서 직접 채석한 사암沙岩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단단합니다. 고토열도는 물론 나가사키에서 기술자가 파견되어 지어졌으며, 마을의 키리시탄 주민도 합심하여 함께 지었습니다. 석조 건물로 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토열도 제공 자료입니다. 아무래도 홍보용으로 촬영한 것이라 상태가 좋아 실어 보았습니다. 포스터는 아리카와 페리터미널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카시라카지마천주당, 아래 사진 카시라카지마 마을 시라하마 지역입니다.
교회는 바다를 굽어보며 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교회 앞의 가옥들은 예전 키리시탄 마을 시절때의 가옥들로 교회와 함께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실제 거주하는 가옥들도 있습니다. 1873년 기독교 해금 이후 양지로 나온 신카미고토의 키리시탄이 건축한 교회는 35개에 달합니다. 이중 현존하는 교회는 29개입니다.
영내 뒷편에 위치한 고문에 사용되었던 석재. 무릎을 꿇려 놓고 이 돌을 무릎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키리시탄 고문 오육석의 탑’이라 씌여 있습니다. 오육석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토 키리시탄 신앙부활 기념비’ 입니다. 기독교 해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청동 부조상으로 고토 키리시탄
주민들과 서양 선교사들이 같이 축하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955년의 시라하마白浜마을입니다. 반농반어의 생활을 했습니다. 한때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몇 채의 가옥만이 보존되어 잠복 키리시탄 마을이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1960년 전후의 시라하마마을 풍경입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모습입니다. 생활상이나 주민들의 옷차림이 빈곤한 낙도라는 선입견을 비웃듯 무척 양호합니다.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을 시작했을 당시에도 이곳 낙도의 키리시탄은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