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APIS와 소형 Filcao
저는 만년필을 매우 좋아하지만, 소장용 혹은 관상용으로 만년필을 수집하지는 않습니다. 제 모든 만년필은 실사용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잉크가 들어 간 만년필이 종이를 만나 펜촉에서 잉크를 쏟아 내고,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어야 만년필 본연의 임무를 다한 것이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중 정확히 딱 2자루가 실사용에 쓰이지 못하고 소장용으로, 때로는 슬며시 꺼내 보는 관상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중 가장 큰 만년필인 '아피스 임페리얼'과 가장 작은 '필카오'입니다. 2자루 모두 잉크를 주입할 수 있고, 글씨도 부드럽게 잘 쓰이지만 실사용을 할 만큼의 사이즈가 아닙니다.
1. 필카오(Filcao) 소형 만년필
이 만년필은 이탈리아 볼로냐 출장 때 전통 깊은 펜샵에서 말 통하지 않는 이탈리아 할아버지와 아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구입한 만년필입니다. 가격은 한화로 4~5만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패키지 상태를 보고 안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앙증맞은 만년필, 앙증맞은 잉크, 풍뎅이는 왜 있는지... 실사용할 수 없어도 하나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로냐 펜샵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잉크를 넣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고 시현해 줬는데, 그 순간 바로 제 지갑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흥정할 정신도 없이 거의 부르는 가격을 다 드린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으로 보면 얼마나 앙증맞은 지 감이 잘 안 오실 것 같습니다. 크기를 현실감 있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무 색(Sac)이 장착되어 잉크 주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잉크를 넣고 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잉크를 주입하고 사용을 해 보니, 손에 잘 잡히지는 않지만 필기감이 아주 부드럽고 잉크의 흐름도 좋았습니다. 닙의 굵기는 EF(Extra Fine)에서 F(Fine) 사이 정도였습니다.
2. 아피스 임페리얼(APIS Imperial) 만년필
제가 소장하고 있는 만년필중 가장 큰 만년필은 아피스 임페리얼 만년필입니다. 무려 국산! made in Korea입니다. 이제 한국 만년필은 거의 멸종되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세계적인 만년필 브랜드가 하나정도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APIS는 '꿀벌'이라는 의미의 단어고, 1956년에 국내 최초의 만년필 업체랍니다. (자세한 APIS의 소개는 여기클릭) 지금도 부산에 아피스 공장이 있고 3명의 직원이 있는데 모두 50~60대의 만년필 장인들이라고 하시네요. IMF 구제금융을 졸업할 때 서명한 만년필이 아피스 만년필이라고 하네요.(관련 보도 내용은 여기클릭)
이 만년필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만큼 세월이 묻어 있습니다. 정확히 몇 년도 생산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만년필 바디에는 잘 관리되지 못한 흔적과 세월이 묻어 있습니다. 먼저 크기부터 한번 보세요.
크기가 커서 무거울 것 같지만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무척 가볍습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아피스 임페리얼의 반전 매력은 펜촉의 구멍(nib hole)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잉크 주입은 바디에 붙어 있는 펌프로 이루어집니다.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잉크 주입도 잘 되고 부드러운 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굵기는 의외로 가늘게 나옵니다. 이것도 반전 매력입니다. EF에 가깝습니다.
잉크를 주입한 만년필은 가끔씩 꺼내어 세척도 해 주고 닦아 주어야 합니다. 세척을 할 때마다 위의 만년필 2자루는 저에게 특별한 재미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두 만년필을 비교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