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우던 일상에서, 함께하는 일상으로
'누가 봐주는 사람 있었어요?'
'아... 아니요.'
'애 셋을 혼자 어떻게 키우셨어요?'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막내의 친구 엄마가
내게 물었다.
그녀 곁에는 이제 갓 100일 된 예쁜 아기도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와달라고 했어야 했어요. 혼자 감당하면 안 됐어요."
시댁도 친정도 멀리 있었고,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아이를
일찍 맡기고 오래 봐줄 수 있는
직장 어린이집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마도 지금의 고단함과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오래 전의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보았다.
ㅡㅡㅡ
지금 우리 집은
영유아기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때 내가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보인다.
ㅡㅡㅡ
노트에는 ‘짜증’이라는 단어가 빼곡했다.
- 짜증 1: 6시 퇴근 후 밥을 하고,
다시 사무실로 야근 가야 했던 상황
- 짜증 2: 남편은 피곤해서 쉬고 있었고, 아이들은 놀아달라 했는데 남편이 티브이를 틀어주겠다 해서 괜히 짜증
- 짜증 3: 피곤해서 아이들 씻기지 않고 그냥 이만 닦이겠다고 할 때, 남편이 설거지할 테니 가라고 했는데도 굳이 씻기고 설거지해 놓고 씩씩대며 나갔던 나
지금 돌아보면, 그저 내가 애처롭다.
회사는 안 가도 됐을 거고,
티브이를 틀어줘도 괜찮았을 테고,
남편이 돕겠다고 했을 때 맡겨도 됐을 텐데.
왜 그토록 꾸역꾸역 다 해내려 했을까.
그때의 나는 행복을 느끼기보다
그저 ‘해치우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다 불만이고 짜증스러웠을까…
아마도 내 마음이 지쳐 있었고, 스스로를 돌볼 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ㅡㅡㅡ
아침에 깨우고, 먹이고, 맡기고,
퇴근 후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씻기고, 읽어주고, 재우고…
끝없이 이어지는 루틴 속에서
나는 나를 돌볼 틈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
남편은 자신도 인정하듯 ‘일이 80’이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모든 걸 혼자 끌어안았다,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ㅡㅡㅡ
지난 12년간 내가 아이들에게 쌓아 올린 언어와 정서가 지금의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나의 고군분투 속에서도
각자 잘 자라주었지만, 나는 분명 반성한다.
햇살 같은 따뜻한 시선과 언어, 정서를 충분히 심어주지 못했던 것.
한 아이는 힘으로 버텼고,
다른 아이는 눈치를 보며 길을 찾았고,
또 한 아이는 서러움을 안고 자랐다.
ㅡㅡㅡ
그때는 아이들을 온전히 바라보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바라보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시선을 바꾸고
물줄기를 확 틀어야 했다.
앞으로 내 품 안에 있을 10년,
그 시간의 언어와 정서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평생 가져갈 단단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나는 일을 멈추고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지금의 내가 해줘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ㅡㅡㅡ
오늘도 나는 웃는 얼굴로
주머니에서 손가락 하트를 꺼내며
아이들을 안아주고 배웅한다.
마음은 여전히 고군분투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큰아이가 내게 건넨 한마디.
“엄마, 웃어.”
그 짧은 처방전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해치우던 일상에서, 함께하는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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