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한밤의 당근 필라테스

by 사계절



그날 밤

나는 정말 피곤했다.


세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죄책감은 잠시 뒤로한 채,

모처럼 동네 언니동생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카톡과 전화가 잇따랐다.


“이거 괜찮아?”


나는 얼결에, 정말 별생각 없이

“굿.”

그렇게 답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얼핏 가격 대비 저렴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남편은 그걸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심야의 잠실행


남편은 그 한마디에

“지금 바로 가야 해.”라며 다짜고짜

나를 태우고 잠실역으로 향했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늦은 밤에? 그 무거운 걸?

하지만 혼자 들기 힘들다며

다급히 말하는 남편 앞에서

나는 어느새 차에 올라타 있었다.


그렇게, 심야의 당근 거래가 시작됐다.




골목길의 불빛 아래


잠실역 근처 빌라의 좁은 골목길.

그 여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사를 앞두고 급히 짐을 정리하던

참이라고 했다.


갑자기 남편이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싣자! 쓰레기차 온다!”


잠시, 나는 고민했다.

이걸 정말 가져가야 할까?

상태라도 좀 보고 가져가면 안 될까?


어둠 속 희미한 가로등 아래,

필라테스 체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싼 스튜디오 등록 대신 큰맘 먹고 샀지만

결국 옷걸이로만 쓰이다 떠나온 물건이었다고 했다.


쓰레기차의 강렬한 불빛이 골목을 비추기 시작했다.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다급해졌다.
“지금 실어야 해!”

고민할 새도 없이
우리는 말 그대로 후다닥 짐칸에

체어를 실었다.
트렁크 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히자마자,
불빛을 번쩍이며 5미터 뒤의 쓰레기차가 우리를 향해 출발했다.


무사히 골목을 빠져나오며,
생경한 당근 체험에 둘 다 웃었다.




거실의 낯선 존재


그렇게 해서,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

필라테스 체어가 놓이게 되었다.


아들은 그걸 보더니 말했다.

“엄마 놀이터네.”


뜨끔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정말 아니었는데.


체어를 닦아 햇살 아래 두니,

골목길에 덩그러니 있던 그 기구가

집 안 한켠에서 묘하게 빛을 발했다.




그날 밤 이후


이제 그 체어는 거실 한켠에 고요히 있다.

햇살이 비추면,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자리만 차지하다 사라질지, 아니면

온 가족과 추억을 쌓는 놀이터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함께 채워가는 시간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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