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일까?
누군가 말했다.
"그건 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대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고통을 볼 때"라고.
그래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지금은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은 나의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있지만
결혼 전 나는 자식도 남편도 없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낀 적이 있다.
그것도 20년도 전에….
나는 엄마가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어릴 때 알아버렸다.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 바닥에서 팔 물건을 사기 위해 여자 몸으로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셨다. 자식 네 명에게 가난을 안겨주지 않으려고 차가운 시장 바닥 노점상에 앉아
장사를 하셨다. 그리고 밤 열 시가 다 되어 오셔서는 너무 피곤해서 밥을 입에 물고 주무셨다.
그리고 졸린 눈으로 다음날 남편이 먹을 밥과 자식 네 명의 도시락을 미리 준비하시고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일어나 가셨다.
그전에는 화장품, 건강식품 이것저것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파셨다.
화장품 외판원으로 가가호호 다니며 화장품을 팔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길,
오토바이 날치기가 어깨에 멘 엄마의 가방을 낚아챘는데 그 가방을
뺏기면 안 된다고 질질 끌려가시다 죽을 뻔하셨다.
그 가방 안에는 가족을 위해 써야 할 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크게 다치셨고 그 후유증은 오랫동안 엄마를 괴롭히기도 했다.
장사하느라 너무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 발목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적도 있고
다 고장 난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난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일하고 돈 버느라 자식을 돌아보지 못한 탓에
자식 때문에 속이 있는 데로 다 썩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엄마이기에 아파도 안되고 쉬어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되셨다.
남편이 있어도 자식과 생계에는 무심했기에 엄마는 몸도 마음도
누구에게 위로받고 기댈 곳이 없었다.
내가 어릴 적 가난한 살림에 아주 작은방 한 칸 구해서 가족들이 이사를 했는데
자식이 네 명이라고 하면 주인이 방을 안 줄까 봐 엄마는 자식이 세 명이라고 하고
나를 할머니 집에 맡기고 이사를 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그때의 기억이 뚜렷하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엔 그 일이 전혀 속상함과 슬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너무나 삶이 고되고 힘들어서 나의 감정과 마음 따위는 귀 기울여줄 여력도 없으시고
마음에 안 들면 잔소리와 화를 쏟아 내셨지만 크게 반항할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자식들을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해주지 못해 우는 엄마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생신날 고된 일을 하고 들어오신 엄마를 위해 언니들과 초코파이 쌓아서
케이크를 만들고 리코더를 입에 물고 삑삑거리며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했을 때
상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고마워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 가슴 깊이 새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향한 애처로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처녀 때부터 결혼해서까지 온갖 고생 다 해서 이제 좀 쉴 때이지 않을까 싶은
엄마 나이 50대 중반, 생각하지도 못한 더 큰 고통과 고난이 찾아왔다.
밤새 눕지도 자지도 못하고 우는 엄마를 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고통받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냥 내가 아프면 내가 나를 죽이면 그만인데.. 그러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거 같은데
내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엄마의 눈물을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괴로움이었다.
혹시 엄마가 어떻게 되실까 봐 엄마 곁을 지키지만 그것조차 나에게도
너무 큰 괴로움이라 간혹 정신을 잃은 듯 누웠다 깬 적도 있다.
그때 기도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아픔과 고난을 주십니까? 왜요? 너무 아파요!"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주신 이야기는 너무나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고
큰 사랑이었다.
"자식이 네 명이 있어도 부모는 한 자녀, 한 자녀를 마치 자식이 하나인 것처럼 사랑한다.
이 자식을 다른 자식이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자식에 네 명이 있는데 한 아이가 죽으면
그 부모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누군가가 와서
'아이고, 그래도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아직 세 명이나 있잖아요!'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켤코 위로될 수 없다. 남은 자식 누구도 죽은 자식을 대신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창조했고 한 명 한 명 나의 자녀 된 모두를 사랑해.
사람이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 속에 죽는 건 나의 뜻이 아니란다. 그건 죄의 결과란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해. 전쟁에 죽어가는 아이나, 가난에 굶주린 아이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아이나. 나는 그들을 창조 전부터 사랑했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다.
그걸 사람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다 못해 그들을 위해 내 아들을 십자가에 죽여야 했다.
나는 세상을 만들고 지금까지,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고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모든 사람이 너를 잊었을 때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다.
나는 너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에 고통받고 우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함께 울고 아파한단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고통받고 죽어가는 나의 다른 자식들에게 관심 없고
생각지도 못할 때도 나는 고통받는 내 자녀를 잊은 적이 결코 한 번도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이 고통 역시 너에게서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함께 했음을 기억해라.
너는 결코 누구를 대신할 수 없는 나에게 유일한 나의 자녀임을 기억해라"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알았을 때 나에게 사춘기는 사치였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았을 때 나의 고통과 아픔은 이길 수 있는 아픔이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너무나 사랑해서 죽음을 택한 사랑!
그 사랑을 알았기에.
그래서인가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보면 '나는 아니라서 다행이고 감사해'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내 삶에 바쁘고 치여서 잊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 때문에 아파하고 울고 계실 테니까.
억울함으로 가슴 치는 이들,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
각종 사건 사고로 부모를, 자식을 보낸 이들,
세월호로, 이태원 사건으로 눈물짓고 고통받는 이들,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죽어가는 이들
이 땅에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큰 위로가 있길 기도한다.
감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고통 속에 있는 그들을 위해 내가 어떤 말로 위로하랴!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함께 울고 아파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그들과 함께하고 다시 그들을 일으키기를 기도할 뿐이다.
여전히 투덜대고 감사하지 못한 부족한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에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과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이 있어 감사한 밤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이태원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난날 쓴 이 글을 보며 다시 한번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자꾸 아파서 병원 다닌다는 부모님의 소식이 멀리서 들려올 때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미국과 한국!
너무 멀리 있어 자주 가지도 못하는데...
아프시다 해도 선뜻 시간 내서 달려가지도 못하는데..
이럴 때면 멀리 사는 것이 불효라는 생각이 든다.
몸은 비록 못 가지만 부모님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들로 인해 감사한다.
아이들의 어떤 모습 때문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내 곁에 건강히 있는 자체로 감사하고
내 곁에서 함께 있을 때 더 안아주고 더 웃어주고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엄마가 내게 베풀어준 만큼은 아니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다해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겠다.
1/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