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목적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바르게 키우기 위해, 본이 되게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을 주기 위해서다.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내겐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잘 키워야지'라고 생각하면 결과물과 상관없이 일단 지금 당장 내가 뭘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시중에 나오는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부모 관련 방송도 보면 될 거야. 먼저 아이들을 키운 선배맘 이야기도 들어보고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행여나 문제가 생기면 상담가도 만나면 될 거야. 실천을 안 했을 뿐, 잘 키우기 위한 방법이 주변에 널렸으니 실천만 하면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마치 열쇠를 풀 자물쇠를 손에 쥔 것처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함정인지 느낀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영어공부법을 찾는데 주변에 널린 정보나 자료를 보고 마음을 놓으면서 내가 안 해서 못하는 거지 이중에 골라서 하기만 하면 잘할 거야라는 생각만 하고 영어한마디 내뱉는 연습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결국 가장 본질적인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면 결국 아이는 잘 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어떤 모습과 상관없이 사랑하는다는 것이 때론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영어회화가 뭐 그렇게 어렵냐! 그냥 아무 말이나 일단 하면 된다. 생각하지 말고 뱉어라."라고 하지만
외국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하고 영어환경에 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주 뜬구름 잡는 말일뿐이다.
"아무 말! 그 아무 말이 도대체 뭐냐고!!!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그걸 모르겠다고!!! "
때론 아이를 사랑하는 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기다려 줘라! 공감해 줘라" 등등 방법과 노하우는 넘쳐난다.
예전에는 몰라서 못했다는 핑곗거리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정보가 넘치다 보니 그런 핑계는 소용도 없다. 누구는 사랑을 안 주고 싶어서 못주나! 남의 자식도 아니고 내 자식인데!
아이의 성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렵게만 느껴진다.
왜일까?
사랑은 머리로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온전히, 오롯이 내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힘든 것은 온전한 감정적인 수용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려고 할 때다.
나도 자라면서 나름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거 같은데 막상 아이와 대치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거나 아이가 반항하게 되면 기다려주고 수용하는 것들이 너무 어렵기만 하다.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그래도 안되면 협박하고 때려서라도 복종시키면 쉽게 상황은 끝날 텐데 그게 싫어서 공감해 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려니 너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아무리 사랑을 줬다 해도 받는 아이가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에 엄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는 사랑을 받았잖아!”라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아닌 아이가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할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한 번씩 나도 모르게 훅 들어오는 나의 부족한 모습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 나의 한계를 느낀다. 나의 절망을 느낀다.
부자 집에서 태어난 아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온 풍요로운 환경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몸에 베인 아이와 가난하게 태어나 늦게 부자가 된 부모 밑에 자란 아이는 같은 부자라도 부를 누리는 태도와 행동, 생활양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서적 부도 마찬 가지다.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정서를 받고 자란 엄마와 나이가 들어 늦게 좋은 정서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엄마는 분명 다르다. 때문에 정서적 수용을 깊이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내가 아이들에게 깊은 정서적 따뜻함을 채워주는 일은 힘이 든다. 잘 안된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나의 어린 시절의 정서적 빈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것은 노력만으론 되지 않는다. 내가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도 많은 노력을 해봤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절망만 마음에 쌓였다.
사실 아이와의 갈등은 아이와의 싸움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갈등과 싸움이다. 갈등 상황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쉽게 나를 용서하고 다시 수용해 주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기에 아이와의 갈등상황이 끝나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한 마음이 쉽게 용서가 안되고 자책하고 좌절하게 된다. 좀 더 인내하지 못하고 좀 더 기다리지 못했던 나 자신 때문에 속상하고 나를 비난하게 된다.
그러면 더 힘들어지고 다시 마음은 땅을 파고 들어간다.
이런 마음으로 또 아침에 눈을 뜨고 아이를 만나면 방긋 웃는 좋은 마음일 수 없다. 돌고 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와의 관계는 괜찮아졌는데 왜 나는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나...
그건 내가 노력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인정하고 다른 무엇으로 채워져야 함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 나도 채워져야 한다! 온전한 정서의 수용을 받고 자라지 못한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더 큰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를 핑계 삼아 어쩔 수 없다 하지 말고 그래서 내가 이런데 어쩌라고! 네가 엄마를 받아들이라고! 소리칠게 아니라 그런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지금이라도 그 결핍을 채우면 된다. 나의 그 어떤 모습도 상관하지 않고 나를 수용하고 안아주는 크나큰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뭘까? 부모님 사랑? 아니,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시지만 부모도 사람이라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뭘까? 그건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분의 사랑 없이는 난 아이들을 채워줄 수 없다. 그렇게 채우지 않고는 내 안에 꺼내 놓을 것이 없다.
본능.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주려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그 본능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것들이 나 자신을 왜곡시키고 내 안에 남아있는 그나마 좋은 정서들을 갉아먹고 마치 내가 원래 악했던 사람처럼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마음의 깊은 구렁텅이에서 나도 이제 빠져나오고 싶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괜찮아 내 손을 잡고 일어서!‘ 하고 내 손을 당겨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온갖 더러운 오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나를 더럽다, 냄새 한다 하지 않고 어떤 비난도 하지 않고 그냥 그 모습 그대로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밤,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겠다 다짐했지만 아이들에게 인내하지 못하고 짜증 내고 잔소리하면서 나의 밑바닥이 드러낸 나는 오늘도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채운다. 비록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채우기 위해 그분 앞에 엎드린다.
주님! 저를 채워주세요.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이들 어릴 적 썼던 글을 꺼내본다. 아마도 아이들을 혼내고 무척이나 자책하며 고통스러웠나 보다. 사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난 언제나 그렇게 나 자신과 싸워왔다.
그나마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이나마 성장했고 내 마음의 정서는 좀 더 풍성해졌다.
이제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나 스스로 나를 조금은 다룰 줄 안다.
여전히 무너지고 넘어지지만 이전처럼 밤새 눈물 흘리고 자책하지 않아 감사하다.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끝없이 나를 받아주시는 그분의 잔잔한 사랑이 내가 갓 태어난 첫 아이를 안았을 때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과 잔잔한 사랑으로 나를 만져주시기에 감사하다.
자신의 생명을 주신 가장 위대한 사랑!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그 위대한 사랑으로 나를 채운다.
11/1/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