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 - 꼭 잘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건 아니야.
초등학교 4학년 때쯤 같은 아파트 통로에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가
1층에 살았는데 피아노를 매우 잘 쳤다.
당시 나는 2층에 살았고 3층에도 같은 나이 친구가 살고 있었다.
1층과 3층에 사는 친구들은 같은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그게 무척 부러웠던 나머지 나는 엄마를 졸랐고 당시 우리 집은
피아노 학원을 보낼 형편이 안 됐지만 엄마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보내주셨다.
사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해서 간 게 아니라 친구들이 다니니까 가고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음치였던 나는 곡이 어려워질수록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피아노 대회에서 나는 대상 다음인 금상을 탔다.
어릴 때부터 뭐든 한다면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던 터라 음치고 피아노에 흥미가 없었지만
대회 준비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결국 나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의 트로피를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당시 지방에 20평 남짓한 아파트 한채 값이 2-3백만 원 할 때였는데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힘들게 돈을 버시던 엄마는 거금 100만 원 넘게
주고 피아노를 사주셨다.
나는 피아노가 생긴 것이 잠시잠깐 기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내가 피아노를 아주 즐겨 칠 거 같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1년 좀 넘게 피아노를 배우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피아노와 멀어졌다.
그리고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산 피아노는 점점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엄마는 잘 치지도 않는 피아노를 이사 때도 처분하지 않고 가져가셨고
내가 미국을 온 뒤에도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를 팔지 않으셨다.
결혼하고 첫째 아이를 가졌는데 누구는 입덧으로 먹고 싶은 음식들이
생겨난다는데 나는 정말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좀 넘게 잠깐 배우다 만 피아노!
대학 졸업 후 반주법을 배우겠노라고 다시 2-3달 학원 다니면서 배우다 만
피아노가 미친 듯이치고 싶어 져서 결국 전자피아노를 구매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서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치면서
옛날 어릴 적 추억과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앉고 걷기 시작할 무렵이 되니
아이 역시 피아노를 좋아했다. 장난감 피아노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두드려 대면서 혼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러댔다.
둘째 역시 태어나서 수시로 피아노 의자에 기어올랐고
피아노 뚜껑을 열어주면 너무 좋아했고 가끔은 둘이서 건반을
마구잡이로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한국에 갔을 때 오랫동안 쓰지도 않고 조율도 제대로 안된 피아노에
첫째 주은이가 앉아서 두드리니 엄마는 정말로 좋아하셨다.
무슨 가보처럼 여기면서 소중히 간직한 피아노는 사실
그 가난한 시절 나의 자존심이었고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시장에 장사할 물건을 팔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여자의 몸으로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셔야 했고 온종일 시장에서 일하다
밤 10시에 들어와 가족들 먹을 반찬 준비를 하시고는
급기야 저녁밥을 입에 물고 졸기 일쑤셨다.
그렇게 힘들게 한 두 푼 모아서 사 주셨던 피아노였다.
아이 넷 키우며 힘들게 일하느라 나를 잘 보살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엄마는 그렇게 표현하신 거였다.
그래서 집안 누구도 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커다란 장식품이 된
피아노를 끝끝내 처분하지 못하고 계셨는데
미국에서 온 손녀가 피아노를 치니 얼마나 좋아하셨겠는가!
너무나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4살이 된
주은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보기로 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갔더니 선생님이 아이가 어려서
손가락 힘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다고 하시며 테스트하셨는데
다행히 주은이는 건반을 충분히 누를 수 있을 만큼 손가락 힘이 셌고
금방 악보를 익히면서 간단한 곡도 연주하게 됐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레슨을 이어갔다.
주영이는 누나가 피아노를 배우자 자신도 가르쳐 달라고 졸라서
1년은 내가 기초를 가르치다가 킨더에 들어가자마자 레슨을 시작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간절히 원해서 시작해 신나게 잘 치던 피아노였지만
한 1년쯤 후부터 악보가 어려워지자 흥미를 점점 잃고 연습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더 도전을 이어가게 할지
경험과 노하우가 있던 터라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고 이야기했다.
"엄마에게는 너희가 피아노를 틀리지 않고 잘 치는 게 중요하지 않아.
너희는 어리고 이제 배워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못 치고 틀리는 게 맞아.
너희들이 원해서 시작했지만
엄마도 너희가 피아노를 배웠으면 한 이유는
너희가 음악과 친구가 됐으면 해서야. 음악을 사랑하길 원해서야.
음악과 친구 하면 마음이 더 따뜻해질 수 있거든.
그런데 잘하려고 하면 피아노가 싫어질 수 있어. 잘하려고 틀리지 않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네가 치는 음악을 한번 느끼면서 해봐.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력하는 거야.
무엇을 배우든 간에 지금은 너희가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배우는 태도가 중요해. 못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하지만 잘 배우려고 노력을 해야 해.
하루에 매일 10번씩만 꾸준히 연습하자. 틀려도 괜찮아. 못 쳐도 괜찮아.
네가 연습했다는 걸로 엄마는 칭찬해 줄 거야."
그리고 실제로 아이들이 피아노를 어떻게 치던 평가하지 않았다.
하루 10번만 치면 그걸로 칭찬해 주고 늘 하려고 하는 태도를 칭찬해 줬다.
우리 엄마가 그저 내가 피아노를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아하셨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이 노력하는 자체로 칭찬해 줬다.
그리고 아이들이 피곤하고 힘들어하면 알아서 연습량을 줄여주었다.
대신 한 번이라도 가능한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마음과 같지 않게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아이의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혼을 냈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때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해 줬다.
"괜찮아! 선생님은 너희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가르치시기 때문에
당연히 부족함을 이야기하실 수 있어. 무조건 잘한다고 하는 선생님이
다 좋은 분은 아니란다.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최선을 다하시기에
아주 훌륭하시고 잘하고 계셔. 대신 엄마는 엄마의 입장으로 너를 정말 칭찬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알잖아.
네가 잘하지 못해도 매일매일 연습했다는 걸. 엄마는 인정해.
엄마에게는 그게 더 중요하기에 엄마 마음에는 네가 최고야.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래 할 건데 막 스트레스받으면서 하지 말자.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아닌데 그냥 피아노를 친구 삼아서
치고 싶은 곡을 치는 정도만 하면 될 거 같아.
다음에 또 선생님이 혼내시면 더 열심히 해볼게요 하렴.
대신 '나는 피아노 치기에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속상해하지는 말자. 지금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
4살 때 시작한 피아노. 아이들은 6년 넘게 꾸준히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만두고 지금은 둘 다 다른 악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가 여전히 피아노를 잘 치고 있냐고?
얼마나 쳐야 잘 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요즘 둘 다 다른 악기를 하느라 피아노 앞에 앉은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은 나보다 더 꾸준히 피아노를 배웠고
그 피아노를 배운 것이 다른 악기를 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의 피아노 실력은 대회 같은 걸 나가보지 않았고
주변에 피아노를 이렇게 오래 친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비교 불가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 둘 다 피아노 치기를 좋아했다는 거다.
레슨 가기 싫어한 적 없고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정한 분량을 연습하고
주말이 되면 시키지 않아도 피아노 앞에 앉아서 자기가 치고 싶은 곡을
치면서 즐겼다. 그러면 적어도 나에게는 성공인 것이다.
투자대비 너무 결과가 미비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거금을 들여 1년을 배우고
그 비싼 피아노까지 엄마가 사줬지만 피아노를 잘 치지 않았고 심지어 음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하도록 이끌었다.
한 번은 누군가는 내게 이런 이야기도 했다.
피아노를 왜 그렇게 일찍부터 가르치냐고. 나중에 별 소용없다.
7살, 8살 정도 손가락에 힘이 생기고 악보를 잘 볼 수 있을 때 해도 늦지 않고
그때해도 더 일찍 한 아이들 금세 다 따라잡는다고.
그때 난 그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잘 치면 좋겠지만 이제 건반을 겨우 누르는 아이들에게
잘 치는 것을 바라야 하나?
나는 아이가 여전히 유창하게 피아노를 못 칠지라도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한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도 아이들에게 들인 레슨비가 아깝지 않다.
우리의 형편이 넉넉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처럼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둘 레슨비가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난한 시절에도 내게 피아노 학원을 보내 주시고 피아노를 사주신
엄마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엄마가 되어 조금 이해되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았고
아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서 아이들이 새롭게 하는 악기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큰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얼마나 잘하냐, 투자한 만큼 결과가 있느냐가
배움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
아이가 배우면서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한 모든 순간들이
나와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뿐이다.
비록 지금 피아노를 잘 치지 않고 그만두었어도..
지금 안 한다고 해서 그 순간의 소중함을 이럴 거면 괜히 가르쳤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 과정의 순간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가 원한다면
나는 아이가 어린 4살일지라도 피아노를 가르칠 거다.
대신 곡을 잘 치고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곡을 연습하면서 완성해 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지금 다른 악기를 한다.
주은이는 바이올린, 주영이는 퍼커션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건 음악과 친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고
또 하나는 악기를 잘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니 아이들의 오디션도 늘어난다.
오디션에 떨어질 때면 이 악기를 하기 위해 돈을 주고 레슨을 계속 시켜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
이런 깊은 고민 속에서 나의 결론은 우리가 정말 가르칠 형편이 안되는데
아이가 재능이 있다면 어떻게라도 계속 레슨을 이어가면서 아이가 성장하도록 도울 거다.
그런데 아이가 재능도 없고 악기 연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데다
우리가 레슨비를 지불할 형편이 안되거나 부담스럽다면 고민하지 않고 레슨을 그만둘 거다.
반면 제일 고민되는 상황, 아이에게 오디션을 쉽게 붙을 만큼 재능은 없지만
아이가 악기 연주를 아주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계속 배워보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레슨비를 어렵지 않게 낼 형편이 된다면 나는 레슨을 계속 시킬 거다.
왜냐면 음악을 가르치는 이유가 오디션의 결과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스트레스 많은 이 시기에 아이가 음악을 배우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못하던 곡을 연주하게 되는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다.
오디션을 넘어 그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 큰 배움을 선사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을 아껴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음악이 아이의 훗날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이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릴 적 배운 피아노를 통해 잘하는 것보다
잘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비단 피아노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잘하지 못하더라도 해야 할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너무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고 "그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