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보다 더 중요한 것
아이들은 태어나서 만 4세가 되어 프리케이(킨더가든:유치원 가지 전에 가는 첫 공립학교)를
가기 전 줄 곧 나와 함께 했다.
연년생 둘을 혼자서 케어하는 일이 쉽지 않아 데이케어(어린이 집)를 알아봤는데
데이케어는 정부지원이 되지 않아 너무 비쌌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데이케어 보낼 돈으로 책에 투자하기로 하고 한국 책을 샀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중고로 100 여권의 한국책을 장난감 대신으로
할 요량으로 사 두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더 본격적으로 책육아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양한 정보를 찾고 공부했다.
무엇보다 한영 이중언어를 잘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중언어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비록 늦은 나이에 미국을 왔지만 외가 쪽으로 이민 역사가 오래됐고
남편은 미국에서 산 시간이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오래됐을 만큼
가족 전체가 이민을 일찍 왔고 친척들도 이미 오래전에 이민을 왔기에
주변에 사촌이며 조카들이 많았다. 때문에 이들 중 아이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부모는 영어를 못해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가까이에서 봤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4살까지가 한국어를 집중해서 익히는 적기였다.
당연 한국은 다르겠지만 미국에서 아이가 한국어를 배우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4살까지가 중요했다. 즉 프리케이 공립학교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이의 한국어 기초를 떼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해도 1년만 지나면 아이의 영어는 한국어를 능가하고
급기야는 영어만 사용하려고 하다가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그도 그런 것이 아이가 커갈수록 자신의 표현이 강해지고 말이 많아지는데
그 중요한 표현과 말들이 엄마와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많기에
점점 한국어가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여러 가지 놀이로 아이들 한국어를 가르쳤고 마침내
세 살쯤 되었을 때는 아이들 스스로 간단한 동화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애기 때부터 나와했던 성경구절 암송으로 한국어 발음이 아주 또렷하고 좋았고
말을 잘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한국어 교육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따로 그 노하우를 나눠보면 좋을 거 같다.
나와 같지 않으면 미국에 있는 많은 한인들은 아이들을 한국어를 위해
주로 토요일에 열리는 한글학교에 보낸다.
내가 다니던 실로암 교회라는 곳도 주일 아침, 교회 예배 드리기 전에
한 시간 정도 한글학교를 열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참석 대상이 아예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첫째가 5살, 둘째가 4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신 권사님께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한글 올림피아드대회가 열리니 아이들 참석해 보면 좋겠다고 권유를 하셨다.
그것도 대회까지 약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은 때였다.
아이들이 준비도 안 됐는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아 승낙을 했다.
여러 종목이 열렸는데 5살 주은이는 나의 경험을 살려 지도할 수 있는
구연동화에 참가하기로 했고 4살 주영이는 동시 낭독에 참여하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성경을 꾸준히 암송했던 터라 외우는 것과 발음에는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권사님의 도움으로 시와 동화를 선정했는데
문제는 동화였다.
동화는 내용이 길어 외울 것이 많기에 아이가 외우기 쉽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권사님께 받은 원고는
문장이 매끄럽지가 않았다. 내가 다시 수정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나 역시 이런 대회가 처음인지라 대본을 수정해도 되는지
행여 된다고 해도 권사님께서 신경 써서 준비해 주신 건데
수정하는 것이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하다가 그냥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하니
발음이 꼬이고 어려워했다. 하지만 아이는 최선을 다했다.
막상 대회에 가보니 다른 아이들은 한글학교를 꾸준히 다니며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대회를 준비해서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단 두 달 남짓한 시간을 준비해서
주은이는 5살로 참여해 구연동화에서 7살 언니 다음으로 은상을 받았고
주영이는 4살로 참여해 동시 부분에서 최연소로 금상을 받았다.
교회에서는 아이들의 수상으로 인해 경사가 났고
아이들은 교회 한글학교의 자랑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해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짧은 시간에 상을 타자 주변의 기대가 커졌다.
나 역시 기대감과 함께 어깨가 무거워졌다.
다음 해 올림피아드 대회가 어김없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오가며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이번에도 대회에 참석하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일등 할 수 있지?
잘할 거야. 파이팅! "
격려차 하는 이야기들이 아이들 보다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나에게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난번 1등 했으니 이번에도 잘해야겠지? 아이들의 실력을 잘 보여줘야겠지?'
이번에는 일찌감치 어떤 동시를 할 건지 어떤 구연동화를 할 건지 정했다.
특히나 동화는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발음할 수 있게
동화를 대부분 직접 쓰고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 대회 보다 좀 더 풍부한 표현을 하도록 아이에게 요구했다.
이렇게 엄마의 준비가 철저해질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커갈수록
그 모든 부담은 아이에게 갔다.
그나마 동시를 하는 주영이는 짧은 내용이기에 금방 외워서 씩씩하게
빨리 끝내는데 긴 구연동화를 하는 주은이는 내용을 외우는 것도 힘들고
거기에다 풍부한 표현을 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원고를 틀리지 않고 하기 위해서 아이는 계속해서 연습을 해야 했고
나는 급기야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 하거나
자꾸 틀리면 인상은 찌푸려지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 도중에 주은이가 힘들어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통수를 한 대 쾅 때리는 느낌이었다.
'앗, 뭐야!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이 대회가 주은이나 나에게 중요한 거야?
이걸로 상 받는다고 뭐가 달라져?
매달 받는 거 말고 대단한 거라도 있어?
1등 하면 한동안 사람들이 잘했다 칭찬하겠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잊히고 다음 대회가 되면
우리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기대하면서
부담을 주는 것 밖에 더 있어?
아이가 지난번 상 받았다고 뭐가 달라진 게 있었어?
별로 있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내 소중한 아이를 이걸로 힘들게 하고
울리고 있지? 주은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아이에게 좋은 정서를 주려고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피눈물 나게 노력했는데 이게 뭐라고
왜 이걸로 그걸 무너뜨리고 깨고 있는 거지?
남의 시선과 기대를 채우려다가 그동안의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아이와의 관계만 나빠지겠다. 그만하자!
더욱이 이러다가 아이가 한국어를 싫어하게 되겠다.
평생 배우고 해야 하는 한국어인데 한국어가 꼴도 싫다며
멀어지게 만들겠다. 이게 뭐라고!
대회에서 상 받는 게 뭐라고!!! '
이런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안에 부정적인 정서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기도하고 울면서 노력했는지 안다면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내 아이와 약속했다.
"주은아, 엄마가 미안해.
네가 힘들고 어려운데도 열심히 하는 거 알아.
그런데 엄마가 그걸 몰라주고 계속 너한테 하라고 해서 미안해.
힘들었지? 주은아! 대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나가지 않을 거야. 대회 준비를 하느라 네가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까 봐 엄마는 걱정돼. 대회준비보다 네가 한국어를 사랑하고
동화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더 중요해.
대신 이번만 최선을 다해서 잘해보자. 약속! "
이렇게 약속하고 더 이상 대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제13회 한글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주은이는 구연동화에서 금메달 주영이는 동시 낭독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대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꾸준히 한글학교를 다니면서 그 결과물로 대회에 참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고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대회만을 준비하다 보니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 경험은 후에 아이들이 커가는 데 있어서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아이의 실력향상과 지금껏 노력해 온 결과물을 보여주고
점검하는 것으로 대회를 활용하면 너무 좋지만
반면에 아이의 실력을 뽐내고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나가는 대회라면 그것이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과정보다는 1등이 되지 못했다는 실망감을 가질 수 있고
그 1등이 되기 위해서 아이를 몰아붙이고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누구를 위한 대회인지, 왜 참여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고 왜 해야 하는지가 뚜렷하다면
아이는 대회를 통해 실패도 경험하고 성공도 경험하면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갖고 성장해 갈 것이다.
하지만 '왜'라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1등 하기 위한 대회라면
오히려 그 무게감이 아이를 짓누르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이런 것을 분별하고 스스로를 케어하지 못하기에
부모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거 같다.
우리 아이들은 그 이후 대회를 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메달을 딴 것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한글을 더 좋아하게 됐다.
시간이 나면 한글책을 읽었고 한글공부에 대해 어떤 요구를
큰 거부감 없이 잘해주었다.
딱 거기까지 하고 멈춘 것이 두고두고 생각해도 잘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