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법보다 잘 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자기 조절 능력 기르기

by 하얀바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도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자기 조절 능력을 기르는 것을 배우는 데는 보드게임만큼 좋은 것이 없다.


보드게임을 진지하게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그 작은 게임판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국 어른이 된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일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어나는 현상은 비슷하나 가상일 뿐이다.

즉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전략을 짜야하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때로는 내 노력과 상관없이 던져지는 주사위에 나의 운명을 맡겨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결괏값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때론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나는 게임에서 질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떨 땐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승자가 되어있기도 하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하는 요즘 말하는 N잡러였다. 그중 하나가 보드게임으로 유아수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대학생일 때 교육과목을 이수하고 교생 실습을 거쳐 수학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딴 후 임용고사를 준비할까 하다 선교에 뜻이 있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중학생보다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방향을 유아수학으로 돌리고 유아수학 교사로 다년간 활동했다. 집으로 방문해서 유아들에게 수학을 놀이와 게임으로 가르쳐 주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아이 중 아주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 아빠가 의사였고 집은 그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여섯 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류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수학 하나만 해도 창의수학, 놀이수학, 학습수학을 받고 있었고 영어, 음악, 운동 등 여러 종류의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아이에게서는 선생님에 대한 존중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아이 어머니 말로는 모든 수업을 싫어하는데 그나마 내가 하는 놀이수학 수업은 좋아한다고 했다. 이유는 내가 가르치는 수학은 보드게임으로 진행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다 보니 이 아이가 이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업 때 게임을 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게임에서 항상 이겼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선생님들이 아이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게임에서 계속 져 주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이가 잘 못 된 선택으로 지더라도 그것을 배우는 자체도 수업이라 생각했고 교사가 할 일이라 생각했기에 무조건 져 줄 수는 없었다.


한 번은 내가 이겼더니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다. 짜증 내고 씩씩대고. 급기야는 자기 엄마에게 말해서 선생님을 더 이상 못하게 하겠다면서 깜찍한 협박도 서슴지 않고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 못 골랐다. 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날 "알겠다." 말하고 더 이상 아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수업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어머니와 짧게 수업 피드백을 하는데 여느 때와 달리 아이는 따라 나와서 눈치를 보며 옆에서 서성였다. 나는 어머니께 수업에서 있었던 해프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다만 아이가 아직 어리기에 지식을 얻든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하는 태도도 중요해서 다음 시간에는 내가 수업과 동시에 아이 태도도 가르칠 것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말고 나를 믿고 맡겨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본인의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대충 눈치를 채시고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다음 주, 여느 때와 같이 자기 위주로 하고 싶은 대로 수업을 하려고 했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한쪽에 진열된 많은 게임 중에서 하고 싶은 게임을 고르라고 했다. 아이는 의기양양해하며 기분 좋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는 게임을 골랐다. 그리고 그것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져 주었다. 그리고 이제껏 아이가 나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으로 과한 리액션을 하면서 크게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가 몇 번을 더 이겼고 나는 또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내가 이겼다. 그것도 큰 점수 차이로. 아이는 속상하다 못해 분해하면서 씩씩됐다. 그리고 나를 흘겨보면서 안 한다고 했다. 나는 어떤 대꾸나 자극도 하지 않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는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네가 분명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아이가 이겼다.


그때 나는 아이가 한 번도 겪지 못한 광경을 만들었다. 게임판을 엎어 버렸다.

아이가 아닌 선생님인 내가! 아이를 전혀 칭찬하지 않았고 아이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건 무효라고 잘 못 됐다고 하면서 더 이상 너와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긴 하지만 그래도 말로는 바뀌지 않는 아이라 거울 치료가 필요했다.

아이는 이긴 기쁨도 잠시 놀란 눈을 하고 쳐다봤다. 나는 한동안 혼자서 분을 삭이지 못한 모습을 하면서 씩씩 대다가 말없이 내가 흩어버린 게임 도구들을 조용히 정리했다.

다 정리한 후 아이에게 바르게 앉아서 내 눈을 보라고 말했다.

아이는 놀랐는지 순수히 잘 따랐다. 그리고 이내 차분해 설명했다.


"네가 지금까지 이겨서 기쁠 수 있었던 것은 네가 게임을 잘했기 때문 만은 아니야.

네가 이겼을 때 너의 승리를 상대가 축하해 주었기 때문이야.

네가 이겼다고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네가 이겨도 아무도 너를 축하해주지 않고 박수 쳐주지 않으면 네 마음은 어떨까?

게다가 네가 이겨서 자랑했는데 다들 정정당당하게 안 해서 그렇다고 하면

너의 기분이 어떨까? 그래도 정말 기쁠까? 아마 이겨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거야.


네가 게임을 하면서 진짜 즐거우려면 이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잘 지는 법을 배워야 해.

항상 이길 수는 없어.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기 때문에 먼저 잘 지는 법을 배워야 해.

잘 지는 법은 네가 이겼을 때 다른 사람들이 져서 속상해도 너에게 박수 치고 축하해 준 것처럼

너도 축하한다고 말하고 박수 쳐 주는 거야.

좀 기분이 안 좋다 해도 상대도 잘했으니까 박수쳐 줄 수 있어야 해.


지금까지 너 이겼을 때 선생님이 박수쳐 줬는데 그때 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어.

하지만 좀 속상하고 기분이 안 좋아도 게임이 즐거웠고 너가 잘했으니까 축하해 준거야.

반대로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너가 좋아하는 게임을 다른 사람이랑 같이 더 많이 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어. 아니면 아무도 너와 더이상 게임을 하려고 하지 않을거야.

만약 너가 져도 박수칠 수 있다면 너는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6살 아이가 될거야.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없거든. 진짜 진짜 멋진 아이 아니고서는.

그런데 선생님이 가만히 보니 너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때, 할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게임을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한 후 이번에는 아이가 이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박수 쳐 주는 모습을 한 번 더 보여주었다.

아이는 어느새 이전과는 달리 이겨도 좀 차분해져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방에 있는 아이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어머니에게 엄청나게 칭찬했다.

오늘 이기는 법만 아니라 지는 법도 잘 배웠다고.

아마 다음에는 져도 이긴 사람 칭찬하는 정말 멋진 아이가 되어 있을 테니

어머니도 지켜보시고 칭찬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고 왔다.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아이는 나와 정말 좋은 관계가 됐고 아이가 나에게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

집을 방문해도 나와도 보지 않던 아이가 오고 갈 때 문 앞에까지 나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고 고집도 피우지 않았다.

또 게임에서 져도 자기감정을 조금씩 잘 조절해 갔고

심지어 ”선생님, 잘했어요." 하고 칭찬도 해줬다.

아이의 이런 변화는 내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




이후 10년이 넘게 흘러 내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가 3-4살 때쯤 보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집에도 승부욕이 강해서 이기려 들고 지면 잘 인정하지 못하는 둘째가 나타났다. 나는 이런 아이를 다룬 경험이 있기에 아예 어릴 때부터 이기는 법 보다 잘 지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승부욕이 강한 둘째에게 세상이 항상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럴 때 울고불고 떼를 쓴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이기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잘 질 줄도 알고 졌을 때 이긴 사람에게 손뼉 쳐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게임을 통해서 가르치고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 가족은 특히나 윷놀이를 좋아했다. 윷놀이는 팀을 짜서 하는 경기이고 윷을 던져서 말을 움직이는 확률적인 게임이기에 일부러 이기고 지는게 힘든 게임이다. 말을 이상하게 놓지 앟는 이상.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즐길 수밖에 없다.

처음에 우리 아이들도 지면 속상해하고 울고불고 안 한다고 짜증도 냈다.

하지만 게임에 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잘 지는 법이 중요하다고

알려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변해 갔다.


처음부터 잘 된건 아니었다. 오래전 수업에서 만났던 아이처럼 둘째가 게임에서 졌을 때 좋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반대로 이겼을 때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고 짜증을 내면서 거울 치료를 해줬다.

그리고 더 이상 너랑 이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아이가 좀 충격을 받았는지 그다음에는 져도 "잘했어!"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대견했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다시 하기 위해서는

졌을 때 좋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본성적으로 승부욕이 강한 아이이기에 다른 활동을 할 때도 본연의 모습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없고 져도 크게 분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다.


이런 가르침이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꼭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겨야만 칭찬받는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보니 다른 아이들이 자신보다 잘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면 인정도 잘하고

함께 칭찬도 잘해준다.

또한 1등하고 이기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생이 되니 여러 대회도 있고 오디션도 있는데

좋은 성적을 낼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결과가 없으면 부모인 나도 사람인지라 실망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괜찮아요. 다시 하면 돼요. 다시 해서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돼요."

하면서 나를 위로 해준다.


앞으로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많은 경쟁 속에 놓이게 될 거다.

노력 했는데도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못내고

원하는 대학에 못갈 수도 있고 원하는 직장에 못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인생에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엄마의 마음은 아프고 안타깝다.

하지만 어릴 때 부터 아이들은 잘 지는 법을 배웠으니 얼른 털고 일어나

포기하지 않고 또 도전할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기려고만 하지 않고 자신 보다 잘하는 이들에게 박수 쳐주면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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