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앞에 장사 없다. 충성을 흔들리게 하는 피로감
소설을 보면 주군과 기사단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사단에서도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측근 기사들이 있죠. 그리고 이 중 누군가는 배신을 합니다.
“왜 배신을 한 거지?”
“주군을 모시면 부귀영화가 올 줄 알았는데 맨날 전쟁에 불려 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니…”
“그게 기사단의 존재 이유 아닌가?”
“백성을 구하면 뭐 합니까? 제가 죽게 생겼는데”
“그들이 뭘 준다고 하던가?”
“평온한 삶”
“평온한 삶?”
“네 그리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
배신자는 잡히고 마지막엔 이런 류의 대화가 오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주군은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다른 기사들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적들의 솔깃한 제안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한테는 왜 제안이 안 오지, 주군께서 나도 의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겠죠.
적들의 제안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주군에 대한 불만도 조금씩 흘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도 주변에 흘려봅니다. 가장 표면의 생각은 적들의 제안이 오면 주군께 알린다는 것입니다. 조금 깊은 내면에는 나도 제안을 받을 수 있으니 귀히 여겨달라는 마음이 있을지 모릅니다. 더 깊은 마음에는 두 가지 옵션을 비교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겁니다. 지금과 적들의 제안, 두 개를 손에 올려두고 여차하면 이동할 마음도 있을 겁니다.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도 이렇게 흔들립니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립니다. 이 일을 굳이 내가 할 이유가 있나에서 시작해서,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백성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아를 지나, 그리고 지금 너무 힘들어로 끝나는 생각들이 반복됩니다. 이때 적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면 미칠 노릇이죠. 적당히 필요한 말들을 하고 수긍하고 파티에 참석하다 보면 좋은 것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자고 훈장을 받으니까요.
현대의 회사생활도 비슷합니다. 조직에는 언제나 기사와 귀족이 함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장에서 싸우고, 어떤 사람은 연회장에서 웃습니다.
기사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충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피로와 비교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남는 기사들은 어느 곳에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멋있게 그려지지만 대부분 끝에는 주군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들은 보상을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싸우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게 아닐까요?
누군가는 어려운 일을 맡고 누군가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춥니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흔들립니다.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웃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대로 일을 배우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언제고 서로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을 얄팍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힘듦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흔들립니다. 편한 길은 항상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와 가깝나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선택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배경을 깔아놓은 소설가들의 안목에 감탄합니다.
‘저런, 조조 같은 인간….‘, ‘장비 같은 스타일이네’ 요즘은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도 많아서 이런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 않지만,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도 문맥을 통해 어떤 말인지 금방 알아듣습니다. 우리가 하는 흔한 말로 남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죠. 그리고 지금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남들이 내 욕을 할 때도 있잖아요? 까짓것, 괜찮습니다. 나도 욕을 하면 됩니다(이런 마음으로 그냥 넘기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 사람들은 힘들다는 말에 잠시 반응해 주지만 자꾸 들으면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싫어할 확률이 높다는 것, 나를 떠나가는 사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나도 그만한 이유가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들이 삶에서 쌓인 지식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지만 소설을 통해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느낌을 공감해 봅니다. 아주 잠시더라도 저는 조금 더 큰 세상에 발을 디뎠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늘어났습니다. 사람은 배신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잃었을 때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