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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han Mar 20. 2016

한 그릇의 식사로 최대의 만족을

어린 시절부터 그래온, 한 끼니에서 최대로 풍부한 식도락을 즐겨내는 법.

언젠가부터 연휴나 여행의 일정 계획을 '끼니'의 횟수로 세는 습관이 들었다.

3박 4일 여행이라면, 도착했을 때 저녁 한 끼, 원래 잘 먹지 않으니 다음 날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과 저녁 두 끼를 센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진미인 늦은 밤 담소와 거리 거닐기가 부르는 출출함을 채우기 위한 야식을 한끼로 더 세는 식이다.


휴일과 여행의 특성상 식사 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필수로 고려해야 할 덕목이며, 그에 따라 이동과 시간 소요 계획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은 또한 합리적이다.


끼니로 환산되는 나의 휴식계획과 식도락의 즐거움을 매 순간 온 힘을 다해서 즐겨야 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감각과 의식 풀가동이다.


이 음식과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평소의 식사관과 영향을 주고 받았다.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때는 순대국을 먹을 때다.


순대국집은 한 곳에서 국물을 끓이고 고기를 삶아 조달하는 체인점이 아닌 이상, 집마다 맛과 부속, 밑반찬의 구성이 모두 다르다. 어떤 순대국집을 들어갈지 고민하는 것부터 무한한 가능성이 꿈틀한다. 순대국을 먹으러 가면 먼저 그 집의 원조 레시피대로 끓여나오는 상태를 살핀다. 내올때 다대기를 한 수저 푹 떠넣어 주는 곳도 있고, 취향대로 조절해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다대기도 식사의 미식 로드맵에 큰 분기점을 하나 준다. 어느 쪽이든 풀기 전에 본래의 국물 맛을 볼 수 있다. 만일 넣어 나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맛을 즐기거나 추후 맨 국물에 썬 고추를 좀 넣어 다대기의 그것과는 다른 칼칼한 맛을 느낄 기회가 남아있을 것이다.


맨 국물, 다대기, 고추, 깍두기 국물을 넣는 순서와 맛보는 시간에 따라 조합한 경우의 수의 사이를 넘나들며 즐길대로 즐긴다. 아직 밥은 넣지 않았다. 밥을 말기 전 먹는 즐거움을 충분히 즐긴 후에야 넣는다. 밥을 넣으면 분명 국물 맛도 변하고, 일찍 밥을 말면 뜨거운 국물에 밥이 불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반 정도는 건더기를 떠먹은 후에 밥 반 공기씩 말아먹는 것을 선호한다. 나름 최적화한 섭취 공정의 밸런스인 셈이다.


자, 국물과 다대기, 밥 섞는 것 정도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양파, 깍두기, 마늘, 순대에 찍는 장의 종류, 입에 동시에 넣고 씹는 조합에 따라 식감과 혀에 둘러지는 감칠맛과 끝맛이 매우 달라진다. 이 점이 나머지 2%의 식도락을 완성하는 차이다.


가끔은 순대국 섭취의 원류대로 밥을 꾹꾹 말아 빠르게 먹기도 한다. 이 역시 즐기는 법 중 하나가 아닌가.

대신, 어제 다대기 푼 국물과 건더기를 좀 떠먹고 밥을 말아 먹었을 경우에만.

질리지 않게, 밸런스다, 밸런스.


냉면의 경우에도 같다.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역시나 고기가 곁들여 나오는 냉면집.

냉면을 먹는데 고기가 나온다는 것, 얼마나 효율적이고 이성적인가.

(역 프레이밍의 승리처럼 여겨져서 나름 경영학도의 입장에서도 훌륭한 음식점이다.

고기에 냉면이 아니라 냉면에 고기라니...아름답다.)


다대기를 풀기 전후의 물냉면 맛, 육수를 붓기 전후의 비빔냉면 맛, 고기와 같이 먹을 때의 맛, 고기를 먹지 않고 연거푸 두세 입을 더 먹었을 때의 맛, 물로 입을 헹궜을 때, 고기와 절인 무를 같이 먹었을 때의 맛의 차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를 먹고 일어서느냐, 국물을 먹고 일어서느냐, 마지막으로 고기 후 온육수냐, 절인 무 후 온육수냐 등의 선택지 조합이 있다.


아마 이것은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맛난 것을 원없이 먹을 수 있도록 돈이 넉넉한 적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여 최대한 많은 것을 한 큐에 몰아넣어 휘젓고 최적의 에너지 소비로 끝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례로, 오죽하면 군 복무 시절에는 샤워를 마치고 청소로 땀을 흘리는게 싫어서 눈총을 받으면서도 청소를 후딱 끝내고 샤워를 하러 갔다. 그리고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샤워를 할 수 있는 시간보다 뒤로 가게 되면 그 날은 운동을 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인가...) 샤워에 투입하는 에너지의 극효율을 추구한 셈이다. 심지어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까지 고려해서 최적의 루트가 완성되지 않으면 종일 기분이 찝찝했다.


한 메뉴를 먹을 때 그 식사 기회 동안에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만족을 느껴내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글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굉장히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흐르게 된다.


마무리의 말을 하자면,

행복은 잘게 쪼갠 감각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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