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를 끝내고 나오니
민이 서있다.
얼마나 기다린 건지..
아니 뛰어온 건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듯 보였다.
제이 : " 동아리 회식 있다고 하지 않았어?"
민: " 괜찮아."
민은 숨을 헐떡이며 대답한다.
제이 : "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민은 이제야 숨이 정리된 듯
숙이고 있던 허리를 곧게 펴며 싱긋 제이를 보며 웃는다.
제이는 속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내 말은 듣고 있는 거야?
민 : " 서울의 밤길은 위험해."
제이 : " 초저녁일 뿐이야. 사람도 많은 큰길이고 "
민 : "가자 데려다줄게."
민은 그렇게 제이의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온다.
제이 : " 아! 그러고 보니 마침할 말이 있긴 했어."
제이는 민에게 단호히 말하기로 했다.
흐지부지 서로의 감정을 말하지 않은 채
스물셋이 되었다.
혹여나 자신의 어중간한 태도로
민을 데리고 있었던 거라면
민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습도가 높아 텁텁하게 느껴지는
여름밤의 공기에 힘입어
제이는 손을 자연스레 잡으려는
민의 커다란 손을 뿌리쳤다.
딱히 사람 관계를 많이 하지 않는
제이의 핸드폰에는
엄마라는 사람, 그리고 민, 편의점 사장, 딱 그렇게
세 사람만 저장이 되어 있다.
그중 한 사람을 제이는 정리하려 한다.
왜 엄마란 사람이 아닌 민을...
제이 : "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
최대한 무표정이어야 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켜선 안된다.
제이는 목소리의 톤을 최대한 낮춘다.
감정이라는 것은 1도 넣지 않고
건조하다 못해 따분하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제이는 민에게
너는 지겹다고 덧붙여 말했다.
갑자기 멈춰 선 민은 제이의 어깨를 잡더니
제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본다.
제이는 민의 눈을 볼 수가 없다.
지금껏 그는 한 번도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았지만
제이는 민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한참을 제이를 보던 민은.
그저 싱긋 웃는다.
민 : " 알았어."
민이 알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제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민은 중학교 동창이다.
민의 어머니는 학부모회 회장이었고.
우아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여러모로 나의 엄마라는 사람과 다른 느낌의.
그래서 제이는 민이 싫었다.
당시 민은 사기 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주변엔 항상 친구도 많았고.
민을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부유까진 모르지만 부족함 없이 자란 티 없이 맑은
양반집 도령 느낌의 민.
당시 그런 민이 제이는 재수 없다 생각했다.
그랬던 민이 제이 곁을 맴돈다.
그 재수 없는 민이.
왜 민은 나를 만나
온 표정과 눈빛과 말투와 몸짓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라고 제이는 생각한다.
제이 : " 진심이야.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민 : "응, 알았어. "
정말 알긴 안 걸까? 민은 앞서 터벅터벅 걸으며
콧노래까지 흥얼흥얼 거린다.
제이 : " 이제 집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
제이는 단단히 쐐기를 박을 셈이다.
다시는 민을 안 볼 셈이다.
민 : "응 "
제이 :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널 싫어해."
민은 제이의 이런 말에도 "응"이라고 답한다.
제이 : " 그럼 여기까지만."
제이는 선을 그으며 굳이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 제이에게 민은 쐐기를 박듯 말한다.
민 : " 제이야 그만해. 다 안다고."
도대체 민이 알았다고 하는 그 앎이 무엇이냐 말이다.
결국 제이의 집 앞이다.
늘 눅눅함으로 장판을 들어
바닥을 말리고 해야 하는
반지하 B101호
민을 돌려보내고.
제이는 자신의 연기가 어설펐던 것인지
민의 시점에서 자신을 보려 노력하다
관두었다.
자신의 방문 칼자국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흥분하여
찍어 내렸던 칼자국이 제이의
방문에 선명히 남아있다.
딸도 자신도 찌르지 못할 그 바보가 남긴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