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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20. 2021

반성합니다

과거의 저를 대신해 반성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 성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어 조금 뻔하고 식상한 그 말. 

그런데 이 사자성어처럼 지키기 어려운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고?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내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머리 터질 일들이 수두룩한데, 남의 입장까지 누가 고려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국 나도 동일한 경험을 해봤을 때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경험한 만큼 알 수 있다는 말, 맞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일에 대해 대충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공감하려면 내가 그 처지가 되어 봐야 한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 결혼하기 전에 내가 역지사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특히 엄마들, 주부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1. 낮시간에 유모차 끌고 백화점을 배회하는 엄마들에 대해 -> 팔자 좋네 

2. 전업 주부에 대하여 -> 팔자 좋네 

3. 애슐리, 스타벅스에서 엄마들이 모여있는 것에 대해 -> 팔자 좋네 


지금의 제가, 과거의 저를 대신해 모든 어머님들, 주부님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반성합니다. 이 글 반성문입니다.


내가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왜 유모차 끈 엄마들이 백화점을 배회하는 건지, 어린아이들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아이와 다닐 때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비상 상황들을 나는 몰랐다. 내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서 길을 나서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수유실이 있는 곳이 얼마 없구나,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은 백화점, 쇼핑몰밖에 없구나.  

가사 노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를, 매일 나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내가 주부로 삶을 살아보니 알겠더라. 내 이름을 남편, 자식 이름 뒤에 세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슴 한 구석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인지를, 조금 알겠더라. 

아이와만 고립되어 있는 그 고립감을, 누군가와 잠시라도 연결되어 있고 싶은 그 외로운 마음을 내가 혼자서 아이를 키워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불러서 커피 사주고 밥 사주던 주변 언니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해외에서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엄마도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사회와의 접촉이 필요한 사람인데.. 내가 그걸 몰랐다.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울컥한다. 누구나 고생하고 살지만, 우리 엄마들도 주부들도 고생했다고. 나를 위로하고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 토닥토닥.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의 시선들이 때론 공격적이고 부정적이어서 힘들 때,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이제 나도 억지로라도 마음의 크기를 넓혀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잘 왔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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