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다른 이름
'패배'가 아닌 '포기'라 명하노라
처음엔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너와 하나가 돼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떠올랐거든.
다시 잘 될 줄 알았어.
네 잘못으로 마주하게 됐지만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러면 되돌릴 수 있을 줄 알았나 봐.
너는 원래 그랬잖아.
나의 큰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면 꼭 안아주며
힘들게 산 나의 삶이 이제는 끝날 거라고 했어.
시간이 흐르니 나에게 그랬지.
힘들게 살았다면서 이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냐고.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나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되어버린 거지.
그때를 대변하는 글을 만났어.
외로움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너를 바라보는 일이고, 쓸쓸함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관계의 물리학」 221p
외롭고 쓸쓸함은 오직 나의 몫이었기에 '이혼'을 받아들이기로 했지.
내 마음은 몇 개의 마음으로 층층이 쌓여있는 걸까?
타인에게 부딪히고 멍들다 내려온
내 마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방은 처절한 아픔만 담고 있었어.
처음엔
그냥 살아내야 했어.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라는 껍데기는
성실하며 잘 웃는 사람 정도였지.
그렇게 되기 위해 쏟아내는 아픔의 덩어리는
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할 내 인생이었어.
나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태연하게 이혼을 마주하게 될지 몰랐어.
"어제 신랑하고 싸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좋겠다! 싸울 사람 있어서"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고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며
"너는 남편이 있으니까 안되지만 나는 다시 사랑을 기대해도 된다. 부럽지?"라며 친구 앞에서 깔깔 웃기도 하거든.
이혼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청소하는데 너는 잠만 자냐?'라고 원망할 대상이 없으니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새벽에 옆사람이 깰까 걱정하지 않고 휴대폰이나 영화를 봐도 되는 장점도 있거든.
참, 시댁과의 갈등이 없다는 건 보너스.
지금은 많이 아프지?
아픈 너를 네가 많이 안아줘.
이혼하게 되는 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만 명심해.
가끔은 몸이 저리도록 그리울 때가 있고
고통스러울 뿐인 기억을 만날 때도 있지만
'이혼은 패배가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함께하는 것을 포기한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며
지금 마주하는 변화를
마음껏 아파하기를 바라.
그 누구도 남의 행위를 심판 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