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딸이 너무 아파!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엄마와 딸의 이야기

by 솔담

몇 주 전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밝게 빛이 나서 들여다보니 '중3 담임선생님'께 온 전화였다.

(내 휴대폰은 늘 무음이다.)


자가 진단한 게 올라오지 않아 노노에게 전화해 보니 받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는 앞이 안보 일정도로 내리는 빗속을 달려 집에 갔다.

아이방 불을 켜면서 "노노야! 엄마 왔어. 갑자기 불 켜서 많이 놀랐지?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 정신 차리고 자가 진단해서 빨리 올려.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에 하자"하고는 아이를 안아주고는 바로 돌아섰다.


회사로 다시 가는 길에 내가 4학년 때쯤 일이 생각났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 있는 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현관문 위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자고 있는 언니를 때렸다.

뒤에 서있던 나는 언니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왜 자신이 이렇게 맞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잠든 아이를 깨우며 "많이 놀랐지?"라고 말한 것은 내가 특별하고 마음이 넓은 엄마라서가 아니었다. 4학년 그때의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된 뒤 강남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우아한 척 가만히 있으라니까? 너네 언니가 그 여자 집에 가서 다 때려 부시고 한다는데 왜 못하게 하는 거야? 너는 분하지도 않아? 네가 못하는 거 너네 언니가 하겠다잖아. 고상 한 건 너 하라니까?"

그때의 나는 또 다른 시절의 나였다.


아빠가 제일 예뻐한다는 이유로 선택된 나.

캄캄한 밤에 엄마는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갔다. 여기에 아빠가 계시니 열쇠를 주고 나오라고 했다. 그 집에는 아빠와 모르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주머니가 깎아주는 감을 맛있게 먹고 집 열쇠를 아빠에게 건넨 후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열쇠 주고 나오라니까 감을 먹고 나왔다며 낯선 어둠 속에서 그 아이를 때렸다.


내게 큰 산 같은 존재인 엄마도 침범하지 못했던 아빠와 그 아주머니의 공간이 생각나서 남편과 그 여자의 공간을 보고 뒤돌아 나왔다. 고상한 척만 하라는 친구의 외침이 나를 더 작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나의 기억 속의 아빠는 술을 드시고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부수는 모습이었다. 아빠가 없었으면 했고, 집을 나간 엄마가 제발 나를 데리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엄마의 선택을 받은 언니가 부러웠다. 큰엄마가 아빠 몰래 엄마를 만나게 해 주던 날, 헤어지며 동생 손을 잡고 엄마와 언니가 안 보일 때까지 뒤돌아 봤다. 혹시나 엄마가 우리도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면서......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그 노래는 나의 노래이자 우리의 노래였다.


겉으로 상처를 준 사람은 아빠였는데,

쉰 살이 된 내게 나타나는 아이는 엄마에게 길들여진 상처 받은 아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에서 주인공 지해수는 남자와 키스를 할 때마다 엄마가 떠오른다. 전문용어로 설명을 했는데 잘 모르겠다. 그 드라마를 볼 때는 지해수가 나였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엄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머릿속에 잠재해있는 이십 대의 그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나는 엄마의 친구였으며 딸이었으며 감정을 쏟아내면 담아내야 할 그릇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이야기를 내게 거르지 않고 구겨 넣었다.

싫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듣기 싫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솔직히 그런 마음조차 갖지 못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내게 주홍글씨가 되어버린 엄마의 말은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내가 만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훈수를 둔다.

보기도 아깝고 사랑으로도 표현이 안된다는 엄마와 딸의 놓쳐버린 골든 타임.


'너네들 때문에 내가 희생을 했다'는 엄마에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딸은 딸이다」에서 로라의 말을 빌어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 하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가 않았어.......

엄마는 충분히 넉넉하지가 않았어......

동생하고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아들이라고 예방접종도 동생만 하고, 원기소도 동생만 먹이고, 동생 짜장면 먹으면 데리고 오라며 한 그릇 값의 돈을 내게 쥐어 준 엄마. 짜장면을 먹는 동생 앞에서 내가 얼마나 침을 꼴깍꼴깍 삼켰는지 알아?

밤늦게 퇴근해서 저기 오는 엄마가 나를 마중 나왔나 싶어 웃으며 뛰어갔는데 "네 동생 운동하다가 다쳤다는데 많이 다쳤으면 너 때문인 줄 알아, **년아!"라고 욕하며 내뱉은 말에 내 마음이 어땠는지 엄마는 알아?

엄마가 너무 때려서 방문을 는데 보일러를 밟고 창문으로 넘어와 때렸잖아.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갈 생각조차 못했어.

엄마 왜 그랬어?

아빠 몰래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월급날 보너스를 안 받은 척하고 엄마에게 주면 보여주던 미소. 그것에 길들여져서 지금도 내가 엄마 집 융자금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 엄마 딸이 너무 아파.

윤송아님의 그림.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 놓는대. 아침이 되면 끈을 풀러 주는데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인 걸 기억하지.
상처를 기억하는 것처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에서-

엄마, 이혼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한 번만 말해줘. 창피하다고 꼭꼭 숨기니까 딸이 떳떳하게 나설 수가 없네?

엄마, 나도 나답게 살고 싶어.

이전 07화 체면이 밥 먹여주는 부모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