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안에 있던 옷들은 한때 새 옷이었다.

버려도 움켜쥐게 되는 과거

by 솔담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오래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하며 미뤄왔던 옷장을 열었다.

한때는 새 옷이었던 십 년도 더 묵은 옷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버려진 옷들의 이야기도 함께 따라온다.


30대의 엄마는 허리가 24인치 정도 되었다. 그 당시 중학생 언니와 청바지를 같이 입었고 아파트 1층에 있는 맞춤 의상실에서 맥시드레스를 가끔 맞춰 입고는 했다. 집에서는 롱 원피스를 즐겨 입거나 롱스커트를 입었다.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에 놀러 갔던 날 엄마와 나는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가 입은 맥시드레스는 그 집과 잘 어울렸고 나만 꿔다 놓은 포대자루 같았다.


1년 교복 입고, 5년 사복을 입었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

사계절을 담고 있는 내 인생과는 달리 서울에서 전학 온 나는 친척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으로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고가의 메이커 옷에 나이키 가방을 메고 다니는 아이들이 드물었던 시골학교.


거기다 엄마는 쭈그러진 인생을 펴고 싶어서인지 속옷을 빼고는 양말까지 다림질해주었다. 엄마와 아빠의 직업은 백수. 아침을 먹고 나면 아빠는 낚시가방을 싣고 낚시터에 갔고, 양말 하나 수저 하나가 나와도 그때그때 처리하는 주부백단이었던 엄마는 200평이 넘는 집에 온갖 꽃과 과실수와 나무를 사다 심었다. 한 모퉁이에 감자나 고구마를 심었더라면 밥 말고 다른 음식의 맛도 보았겠지만 그런 행운은 내 것이 아니었다.


며칠 계속되던 싸움이 끝나면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겼다. 엄마는 아빠의 무능을 탓했고 아빠는 내가 놀고 싶어서 놀고 있냐는 말만 늘어진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무한 반복되던 그때 아이들의 가방에는 납부금 통지서가 들어있었다. 겉만 번지르한 우리는 마음이 황폐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를 대는 기계에서 찍혀 나온 최상급 상품이 되었다.



싱글맘이 되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아이를 안고 엉엉 울고 있는데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 도시락을 싸줘야 한다면서 올라가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아니, 엄마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자식들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겨서 굴레를 벗어나자 아빠는 도시락을 007 가방안에 넣고 버스 타고 전철 타고 1시간 넘는 거리의 아파트에서 7년 정도 경비원 생활을 하셨다. )


그때 내게 눈에 띈 엄마가 즐겨 입던 부잣집 사모님 같은 맥시드레스와 초콜릿색 주름 스커트와 모직 플레어스커트. “이거 비싸게 주고 맞춘 옷이다. 엄마가 너한테 물려주니까 잘 입어.”라며 건네준 그 옷들을 확 잡아당겨 옷걸이에서 빼내어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싫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지냈던 과거가 함께 버려지는 줄 알았다.


외면했던 엄마를 찾아가고 4년이 흘렀다. 엄마는 20년 넘은 가죽조끼와 흰색 블라우스를 건네주었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옷장에 걸어놓았다.


코로나로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집에 있으라고 (우리 집에 오는 거 싫다고, 다 큰 아이 안고 할머닌 너를 제일 사랑한다고 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다간다.


오늘따라 그 옷이 자꾸 거슬린다.


예전처럼 확 당겨서 구겨 버리지 못하는 나.


과거라는 번데기 속에 꽁꽁 묶여있는 나는 나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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