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이혼 생활
그중에 제일은 금쪽같은 내 새끼의 상처
'김치를 먹더라도 함께 할 테니 아이만 잘 키우라'던 아버님도
포대기는 덥다고 얇은 기저귀 하나로 아이를 업고 내려놓지 않던 어머님도
형이 없어도 집에 찾아와 함께 웃고 떠들던 시동생도
'큰언니' '작은언니'라고 불렀던 시누들도
연락 한번 없었다.
열이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아이를 돌봐달라고 과거의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가스불 위에 뭐 얹어 놨다'며 전화는 끊겼고,
'아이 못 키우겠으면 나한테 보내! 왜 우리 엄마한테 연락하냐'던 그 사람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내 전화기에서 그들의 번호가 사라졌다.
며칠 전에 문자가 왔다.
내 감정을 빼고 노노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춘기 아이인데 말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는 이렇다.
10년간 아무 연락 없다가 이제 와서 왜? 연세가 있으시니 아프신가 본데 마지막으로 아이 얼굴 보고 싶은가 보지?
그 뒤에는?
그 사람은 부모님 한을 풀어드리려 연락했겠지만
내 아이의 상처는?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끝이 났고 아이와 그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난 게 아니란 것을 알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잠시 뒤에 도착한 답장.
미친 거 아냐?
욕이 저절로 나왔다.
잠 못 이루고 아이에게 말하려 주춤했던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적어도 그들과의 관계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가 상처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가족의 틈에서 자기 자신을 배우고 가족들이 바라는 행동과 역할을 수행하며 세상 밖으로 확장시키는 자아인식을 엄마로부터만 인정받고 자란 한부모 가정의 내 아이.
이혼이란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슬픔을 애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그 감정의 쓰레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해 버릴 때도 있었다.
내 감정을 내가 인지하고 표현하자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아이로 자랐다.
결혼생활과 배우자를 다루는 일에 실패한 미성숙한 엄마는 성숙한 이혼 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아이만은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잘 해내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