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의 끝에 하고 싶은 것
드라마 몰아보기 - 또 오해영
아이가 깜깜한 밤을 혼자 견뎌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즈음 시작한 라인댄스. 오롯이 나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월급에서 나를 위해 한 달에 3만 원을 투자하면 일주일에 세 번 음악에 몸을 맡길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도 중요했지만 돈도 중요했습니다. 내 처지에 맞는 돈.
그리고, 책 사서 보기. 처음에는 새책을 고집하다가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나서 중고책 구입을 했습니다. 생각나는 것을 끄적거리고 메모하고 줄 긋고 생각을 적어놓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화책과 부모교육 서적만 읽던 제게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 빨간불을 보지 못하고 사거리를 지나쳤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 친구의 아이들과 자주 갔던 산 중턱의 찜질방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책이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었습니다. 딸인 위녕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혼가정의 아픔을 느끼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자세한 건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세 번째 이혼을 앞둔 엄마에게
'내 딸이 세 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되는 거 정말
싫지만 딸이 불행한 건 더 싫다'
고 지지해주는 외할아버지의 말만 기억이 납니다.
「또 오해영」에서 에릭과 서현진보다 더 찡하게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서현진의 부모님.
드라마 하나를 보면서도 내게 필요한 것만 보입니다.
딸이 남자 친구에게 줄 도시락을 싸면 함께 음식을 만들어 주고, 엄마가 뭐라고 해도 옆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아빠.
아내에게 딸의 남자 친구가 맞을까 봐 딸 남자 친구의 손목을 잡고 함께 도망쳐주는 아빠.
딸의 뒤통수를 한대 치는 엄마지만 우는 딸을 방문 틈으로 보며 우는 엄마.
새벽에 몰래 숨죽여 들어오는 딸에게 '들어오라고 해! 같이 밥 먹게'라고 말하는 엄마.
사랑에 아파 이사 가자고 하는 딸의 말에 이사를 결정하는 엄마.
"나 부딪힐래. 피하지 않고 부딪힐 거야" 하는 말에
이랬다 저랬다 하냐는 말 대신 토닥임으로 응원해주는 엄마.
엄마! 나 그 남자랑 살고 싶어!
딸의 그 말에 부모님은 또 일어납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남자 친구의 차를 만나게 돼서 딸의 짐이 옮겨집니다.
'엄마! 내 얼굴을 봐줘'하는 딸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 같지만 딸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 돌려 쳐다보는 엄마.
부모님 앞에서 숨기지 않고 내 감정을 내보이는 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부모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딸이 어떠한 결정을 하든 아파해주고 웃어주고 편들어주는 그런 부모.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소리치고 뒤통수를 갈겨도 옆에서 지켜봐 주는 아빠가 노노에게는 없어서 참 미안했습니다.
토요일 새벽까지 「또 오해영」을 봤는데 알람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노노 아침밥을 차려주고 비몽사몽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등에 배낭 하나씩 매고 나타난 부모님.
누워있는 제가 민망했습니다. 상추, 고추, 호박, 가지, 토마토,옥수수등 작은 텃밭에서 부모님이 직접 기른 채소들이었습니다. 간짜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부모님을 전철역까지 모셔다 드리며 돌아 오는 길에 그냥 이대로 쭉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끝이 바다였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다까지 달려가 보는 것!
저의 숙제입니다.
월, 화, 수 휴가라고 하면 집에 오라고 할까 봐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그날의 사건과 딸이 기억하는 그날의 사건이 다른 시선인걸 압니다. 소리치고 욕하고 화내는 아빠지만 집안의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은 엄마가 합니다. 「또 오해영」의 아빠처럼 묵묵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결정에 따라가는 아빠. 엄마가 힘을 내고 살아가는 이유가 그런 아빠가 계셔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혼한 딸을 보따리에 꽁꽁 싸매 놓고 꺼내 보이기 싫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저는 아직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말라서 뼈만 남아버린 두 부모님의 배낭이 홀쭉해져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언젠가는 부모님께서도 감추고 싶은 딸을 내려놓고 빈 가방을 멘 채 떠나시리라는 것을,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 무거운 짐을 왜 부모님은 딸과 함께 나누지 않고 혼자서만 매고 가려는지......
지친 하루의 끝에 어떤 것을 하고 계신가요?
이번 휴가는 책 읽고 드라마 몰아보며 보내기로 했습니다. 또 오해영 몰아보기 했으니 이제는 책 한 권 읽으려 합니다. 월, 화, 수 평일의 휴가가 기대가 됩니다.
살아지는 걸 인정하면 엄한데 힘주고 살아지지 않아.
또 오해영의 대사처럼 힘 빼며 살아갈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