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들어주는 것, 그리고 위로하지 않는 것
쉬움과 어려움 사이
그동안 99개의 글들을 쏟아내면서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공감받고 싶었습니다.
그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쏟아내면서 저는 성장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썼지만 읽을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글이 있습니다.
그때의 마음이 생각나서 나만 제일 아픈 것 같았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쓴 글은 진실만을 담고 있는 걸까요?
저의 기억만을 담고 있으니 진실하다고 할 수 없음을 압니다.
내게는 큰 덩어리처럼 마음에 떡하니 자리 잡은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로 퉁쳐버려 지는 것도 있습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의 관계도 떠올리기조차 싫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하루를 맞이하고 ,
그렇게 아파하며 지내다 보면 마음이 성장한 건지 내가 성장한 건지 모를 만큼의 옅어지는 기억 속에 살며시 마음을 기대어 보기도 합니다.
그랬더라면...... 지금 상황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도 해봅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내 아픔이 제일 커 보였습니다.
하루가 살아짐에 안도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쌓인 날들이 모여 저를 이만큼 성장시켰습니다.
그 기억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 사람은 그래서 그랬겠구나.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인 그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의 글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고
나의 글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남의 글은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만 줘야 하는 것이고
남의 글은 내가 남이 하는 이야기를 위로하지 않는 것이어야 함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른 사람이 무심코 내뱉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공감을 누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글을 쓰면서 알아갑니다.
어쩌면 다음 생에는 마음이 건강한 엄마를 만날 수 있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십 대!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것을 누리며 살 수 있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어깨의 짐이 조금 가벼워지는 여자이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있다'와 '이따'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내가 될 수 있겠지......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125p-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어떤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세상에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힙니다.
그 세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제일 아프다고 징징대며, 그저 들어주고 그저 위로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또 나답기 위해 지금을 살아갑니다.
한 걸음 물러서있는 그림자만으로도 멋지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도 나입니다.
나서지 않아도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그림자 같은 그런 나도 나입니다.
덜 자란 어른이 오늘도 써내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