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유통기한
한 때 '우리'였던 사람과의 거리
친구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아는 언니와 전화로 다투고 전화를 끊었는데, 장문의 글이 왔다면서 그 글을 복사해서 보내주었습니다.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읽어야 하는 글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더군요.
긴 글 속에서 글쓴이의 본심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언니를 모르는 저로써는 친구가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만 전했습니다.
그 언니를 안다고 해도 둘 사이에 제삼자가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 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106p-
몇 주전 노노와 밥을 먹다가 아빠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연락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바뀐 전화번호를 전해준다는 게 실수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는데 다시 걸려오는 전화. 물론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황했고 그 뒤로 노노와 저는 엄청 크게 웃었습니다.
실수로 눌렀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졸업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진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의 행동이 너무 부끄럽고 정말 미안하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을 믿었기에 노노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뒤에 들은 미안하다는 말.
아직도 유통기한이 남아있는 말일까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 혹시라도 제게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10원이라도 그 사람에게 돈이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많지 않은 보험금과 집, 차 등은 꼭 노노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sns에 나만볼 수 있는 글로 유언장을 썼습니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는 그 돈을 동생이 맡아주고, 그 사람에게 가서는 안된다는 말을 썼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말로 전했고, 제 지갑에도 유언장을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아이에게는 "네가 자라서 너 닮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엄마가 꼭 지켜줄 거야. 하지만 혹시라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모도 있고 삼촌도 있고 할머니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아빠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지갑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유언장도 찢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제가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남보다 내 생각을 먼저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남이 하는 말에 상처를 받지만 나와 생각이 틀리면 툭툭 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털어도 털어도 생각나는 상대방의 말은 그 사람과의 거리만 멀어지면 됐습니다. 그렇게 내가 건강해지기로 마음먹으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문제는 역시 나였습니다.
타인과의 거리라는 것은 바로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어림잡아 더하는 일이다.
- 살고 싶은 농담 107p -
한 때 '우리'였던 사람과의 거리는 얼마일까요? 그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쳐놓은 보호막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음을 압니다. 아이가 자라고 제가 자라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이와 아빠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면서 점점 좁혀지는 그 거리.
영화 [나이트 인 로댄스]를 보면서 저와는 남이지만 아이에게는 아빠인 그 사람에게 미움 +1을 더 이상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공감할 수 없을 때는 침묵할 것!
그는 한 때 '우리'였고, 지금은 그냥 '사람'입니다.
엄마도 바다 근처에 집 짓고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노노. 사진은 「라이트인 로 댄스」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