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밥을 합니다.

가족 그 끈끈함에 대하여

by 솔담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밤은 설렘에 잠을 못 잤다. 소풍 갈 때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바나나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졌다. 그땐 그랬다.


부모님의 싸움이 일단락되어 화요일에 우리 집에 오시는 게(휴대폰 개통으로) 예정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저녁을 먹고 김밥 재료 준비를 하고 누웠는데 알람이 울렸다. 일어날 시간. 더자고싶다......

옛날 우리 엄마도 이랬을까?


그때 엄마의 나이보다 더 들어버린 딸이 엄마를 위해 김밥을 싸니 어릴 적에 보이지 않았던 엄마의 수고가 생각났다.

그땐 친구들과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고, 김밥 먹을 생각만 했다.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아이가 자라 남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출근하면서 전화를 하니 허걱! 금요일로 변경을 했단다.

옆구리가 터져도 이름은 그대로 김 밥^^

김밥 열 줄과 유부초밥 한 접시를 누가 다 먹는담? 난감하네 ㅋㅋ

엄마가 좋아하는 야채샐러드도 해놨는데 쩝.

딸의 김밥을 맛보기 위해 아빠는 왕복 5시간 거리를 다녀가셨다. 오로지 김밥 공수가 목적이었다.


며칠 전 떨리던 목소리로 전화하던 아빠가 생각났다.

"옛날에는 안방에서 담배를 피웠잖니, 이제 2층에 올라가서 베란다 문 열고 담배를 피우는대도 뭐라고 한다."

떼는 말이야~는 팔순의 아빠에게도 통하는 말이다.

20년 전 엄마는 큰 수술을 하신 뒤 '이렇게는 안 살 거다!'라는 선언을 하셨다.

아빠는 술과 담배를 끊으셨고 아주 먼 곳 일산에 있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해서 8년간 일을 하셨다.

'남자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와야 한다'며 아빠 들으라고 20년간 허공에 대고 말을 하신 엄마의 소원이 성취가 되었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니 엄마는 아빠를 받들어 총!!


시골에 이사 와서 부부싸움을 크게 한 뒤 아빠는 다시 담배를 피우셨고, 엄마는 못마땅함을 2층 화장실 변기 물 잠그기, 재떨이 아래로 던지기 등으로 표현하신단다.(엄마는 악동이다.ㅋ)

부모님 일에는 툴툴거리는 투로 말을 하는 동생이지만, 흡연자 입장에서 '담배는 기호식품인데....'라며 말끝을 흐리며 웃는다.


금요일 메뉴는 볶음밥.

야채를 다지고 햄을 다져서 한 접시, 계란볶음밥 한 접시.

요번 주는 괜스레 분주했다. 가끔 김밥을 싸서 먹고 자주 볶음밥을 해서 먹는대도 부모님이 오신다니 무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들떠있었다. 오늘만 출근하면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힘내어 토요일을 맞이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모르기에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게 된다. 부부싸움이 잦았던 가정에서 자란 나는 큰소리만 나도 두려움에 갇히고, 얼굴 표정으로 들키고 만다. 부모의 언어로 길들여진 나는 내 안에 그 언어가 잘못됐다는 걸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나는 많이 아프다.

그 언어가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도 조금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힘듦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 웃고, 싫어도 싫은 표정 짓지 않고, 남에게 버림받을 까 봐 그 사람을 이해하는 척하는 위선자 노릇을 안 해도 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아이들과 안전교육을 하며 무수히 외쳤던

'싫어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는 내가 나에게 하는 외침이어야 했다. 겉으로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움츠려 들었던 사람인 나.


부모의 언어가 중요함을 알고 내 자녀에게는 나보다 강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려 한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자녀에게 평가받을 그 날이 올 것이고 그때는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나의 내면의 아이가 더 단단해지도록 해야겠다.


부모의 언어가 잘못됐다고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을 위해 일단, 밥을 합니다.

그리고,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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