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작은 딸이 며칠째 계속 설사를 했지만 병원을 찾기보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를 택했습니다. 길가다 잘 익은 대봉 감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설사하는 딸의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가 감이 얼마인지 물으셨습니다. 가격을 묻기만 하고 사지 않는 모녀의 뒷모습을 가게 주인은 한참을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 때 뒤돌아보니 아직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나에게 과일 먹는 것은 크나큰 사치였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과일을 사러 시장에 갔습니다. 여전히 엄마는 작은 딸을 저 멀리에 세워 놓으십니다. 어린 너는 창피하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일을 팔다가 상하거나 변색된 과일은 바구니에 담겨 천 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땅바닥에 내려져 있습니다.
엄마는 인심 쓰듯 사과 한 바구니, 배 한 바구니를 담은 봉지를 들고 작은 딸 곁으로 오셨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서 상한 것이 별로 없다며 멍이 든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 보십니다. 엄마의 손에서 봉지를 건네받은 작은딸은 엄마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됩니다.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는 엄마는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며 작은딸을 올려다봅니다. “부모 잘 못 만나 네가 고생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 작은딸은 가슴이 아픕니다. 돈 많이 벌어서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데 아직 어린 자신 탓을 해 봅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어린 그때의 엄마. 엄마도 창피했을 텐데 엄마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치유하셨을 그 아픔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 멀리에 서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가까이에 가서 엄마의 창피함을 나누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엄마! 시장에서 상한 과일 살 때 창피했지? 하고 물으니 "엄마니까 괜찮아, 많이 못 사줘서 미안해서 그렇지 그거라도 넉넉히 못 사준 게 한이 된다."라고 하십니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그 풍경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잔잔한 파도가 되어 아픔을 삼키고 있습니다.
엄마라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엄마는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나셨습니다. 6.25가 지난 그 시절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과일나무‘를 가지고 오라고 했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복숭아나무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집에 심으셨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엄마는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두 손을 붙여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며 보여주십니다. 쪼글쪼글 해진 손이지만 작은 아이가 선생님께 매 맞을 때 두려움을 담고 있습니다. 동네에 집집마다 심어져 있는 감나무가 엄마네 집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감을 무척 좋아하는 엄마는 감나무가 우리 집에만 없었다고 자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빼먹지 않고 대봉 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내가 주변머리가 없어서 너 설사할 때 이천 원짜리 감하나 사서 먹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내 아이가 태어나던 날 단감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올케가 단감 한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깎기가 무섭게 단감은 내 입으로 쏙쏙 들어갔죠. 그 어느 때의 감보다 달았습니다.
문이 열리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뭐가 잘못됐나? 싶었습니다. 아이 낳고 딱딱한 거 먹으면 안 된다며
단감을 사 온 올케도 먹은 저도 짬짜면 같이 세트로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년 전 이사한 엄마의 시골집에는 감나무가 여섯 그루 심겼습니다.
큰 딸이 좋아하는 대봉감나무도 작은 딸이 좋아하는 단감나무도 엄마의 정성을 듬뿍 받아가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사과, 체리, 블루베리 등 여러 과일나무도 있습니다.
작은 마당에 일 이년생 나무가 빼곡하게 서있습니다.
그러다 나무가 자라면 숲을 이룰 것 같다고 해도 엄마의 과일나무를 향한 욕심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올해는 아빠 몰래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3년 된 감나무를 두 그루 더 사 오셨다고 합니다.
엄마의 성격이 묻어난 듯 마당 끝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긴 과일나무를 보며 엄마는 흐뭇해하십니다.
이제 자식 대신 나무에 물을 주고 어루만져주며 정성스레 가꾸고 계십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나무에서 딴 과일을 함께 먹으며 지난 추억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나무를 학교에 가져가지 못해서 작은 아이가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을 때의 두려움도 잊고 감나무를 보며 엄마의 매일매일이 행복으로 물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