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행을 기회로 잡으리

by 솔담

새 학기가 되고 민간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반은 내 아이와 나이가 같은 6세 반 24명.

아이가 방학하면 내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서 함께 한다는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일할 때와 많이 달랐다. 평가인증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났고 종일반 원아들이 있어서 늦게까지 근무를 해야 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끝나면 엄마가 일하는 어린이집으로 와서 함께 있었다. 그런데, 수족구 같이 전염병이 걸린 날에는 어김없이 누군가가 아이를 돌봐줘야 했다. 난 최대한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야 했고 1시간 거리 친구가 사는 곳에 새벽이면 달려가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기도 했다.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는 어느 날 나보다 12살이 많은 띠동갑 선생님이 실업급여를 받고 쉬고 있는 터라 사정을 말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집 비밀번호를 말해주었고,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도 우리 집을 지나가다가 몸이 아픈 친정언니를 데리고 와서 쉬고 간다고 했다. 그건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서 우리 집에서 그 선생님이 아이를 돌봐줄 때 어김없이 그 선생님의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 함께 있었다. 그것 또한 내가 이유를 댈 수 없을 만큼 난 아이를 돌봐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에 윗집 주인이 바뀌었고 측량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이웃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찾아왔다. 우리 집 뒷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이웃집까지 넘어오니 공사하는 김에 파내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누군가가 은행나무 뿌리가 집안까지 들어와 있으면 안 좋다고 한 게 생각났고 내 돈 들이지 않고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은행나무를 파내고 나니 그 자리에 흙이 필요했다. 비가 오면 뒷마당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아이방에 습기가 찰 수 있다고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었다. 사람을 사서 흙을 고르고 기울기를 맞추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답답했고 답답함의 크기만큼 지불해야하는 돈도 늘어났다.


심야전기로 돌아가는 보일러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 연락을 하면 살펴보고는 자신이 할 수 없다며 출장비 오만 원을 받아가기도 일쑤였다. 벼락만 쳐도 왜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온수파이프 전체를 바꾸기도 했고, 집안에서 보일러 온도 조절하는 것이 낡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해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제안한 온수통을 바꾸면 전기요금도 적게 나올 거라 해서 눈물을 머금고 이백만 원 주고 그것까지 바꾸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버거웠다.

설상가상으로 윗집에서 2m 옹벽을 친다고 했고, 어느 날 퇴근해서 돌아와 보니 정원에만 세워질 줄 알았던 벽의 철근 구조물이 뒷마당 아이의 방이 있는 곳까지 세워졌다. 이웃집에 가서 아이방 쪽은 안 세운다고 하지 않았느냐 말하니 내 땅에 내가 세우는데 아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아저씨도 아이를 키우지 않느냐, 아이방에 햇볕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겠느냐 말을 했지만 내 땅이라는 말뿐이었다. 찾아갈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나는 구청에 인터넷으로 민원을 넣었다.

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원장님 남편분인 목사님과 차량 운행하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더니 우리 집 잔디밭에서 윗집 공사하는 아저씨들은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대관령 삼양 목장에 가서 본 대로 얼기설기 엮어놓았던 나무 담도 부서져 있었다. 우리 집 대문까지 내려와 공사하러 올라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하니 담을 부수고 공사를 하고 있었나 보다. 목사님이 웃으며 이야기를 해도, 내가 남의 집에 와서 이게 뭐냐고 이야기를 해도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옹벽이라는 것이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하면 쌓을 수 없는 건데 담까지 부수고 들어와 일을 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었다.

점점 높아지는 담. 2m 옹벽 이랬는데 올려다보니 꼭대기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다시 이웃집을 찾아갔다. 어차피 쌓는 거 3m를 쌓는다고 한다. 지적도를 들고 가서 수돗가 옆도 세모 모양인데 왜 직선으로 쌓았냐고 해도 지적도가 잘못된 거라고 했다.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고 말하고는 집에 내려와 엉엉 울었다. 이 길이 내 땅이라고 다니지 말라던 언니가 슬쩍 다가와 우리 집 측량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이 아빠일 테니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억울하고 억울해도 그 사람한테는 연락하기 싫었다.

낮에 내가 없는 사이에 구청에서 다녀갔다고 윗집에서 내려왔다. 아이 방 있는 곳은 밭으로 되어있어 허가를 받지 않고 담을 쌓아서 벌금을 맞게 됐으니 수돗가 옆 땅에 직선으로 담을 쌓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아마도 구청에서 나와 그것까지 지적하고 간 것 같았다. 여하튼 지적도대로 그대로 하시라는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조금은 후련했다. 그 뒤로 아이가 인사를 해도 이웃집은 인사를 받지 않고 지나다녔다. 우리 집 나무 담은 복구를 안 시켜줬고, 우리 집에 들어와 일하다가 술을 마시거나 참 먹는 것도 계속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웃 중에 툇마루가 우리 집 대문과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곳에 안경할머니가 사셨다. 아들을 먼저 잃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였는데, 이사와 보니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는 길이 없어서 다른 집 밭을 밟고 다니셨다. 푹 꺼지는 밭에 괴목을 놓아 길을 만들어 드렸고, 눈이 오면 할머니 나오는 길목의 눈을 쓸어드렸고, 여름이면 잔디밭에 물 주는 김에 할머니네 밭에 물을 주었다. 아이와 둘이 있게 되었을 때도 소풍을 가면 김밥을 나눠 먹었고, 겨울에도 장판 하나에 의지해 계시지 말고 낮에는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우리 집 찜질방(심야전기가 들어오는 첫방을 그렇게 불렀다. )에 오셔서 계시라고 했다. 며칠 째 불이 안 켜져 있으면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밤에 혹시 아프시면 꼭 저한테 연락하시라고 했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고 하시던 할머니셨다.

몇 년이 지나 아이는 9살 이 되었고 나는 띠동갑 선생님이 인수받은 가정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에 할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집 내놨어? 이사 가려고?"

"네, 내 땅 네 땅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저희 땅도 길에 들어가 있지만 윗집과도 그렇고 앞에 밭 언니 하고도 그렇고 사람이 무서워요." 했더니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셨다.

"여자가 먼저 와서 현관문을 열면 키 큰 남자가 그다음에 와서 들어가. 몇 번이고 그래서 내가 차 번호를 적어놨어. 부동산에 비밀번호는 뭐하러 알려줘?"하고 말씀하시는 거다.

차 번호를 보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먼저 들어온다는 여자는 아이가 아플 때 돌봐주던 나랑 띠동갑의 선생님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내가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의 원장이었다.

시간을 두고 들어간다는 키 큰 남자는 그 선생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친구에게 전화해 엉엉 울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들은 무슨생각으로 아무도 없는집에 들어간걸까?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현실적인 말을 해주었다.

"지금 당장 네가 거기서 일을 안 하면 안 되잖아. 그러면 그 선생을 안 볼 수 없는 거고. 참아, 다른 일자리 구한 뒤 그다음에 말을 해. 어쩌겠니."

아이 아플 때 알려줬던 비밀번호. 친언니가 유방암이라 공기 좋은 선생님 집에서 쉬어간다고 해서 알려줬던 비밀번호가 그렇게 그들의 밀실 역할을 하고 있었다니 미칠 것만 같았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이 나의 상사이기에 그사람이 주는 월급을 받고 있기에 말 한마디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다음에도 그들은 비밀번호가 바뀐 우리 집에 왔다 갔다고 한다. 문이 안 열리자 잡아당기기까지 하면서......

"아랫집 안경 할머니가 그러는데, 부동산에서 자주 우리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한대요. 여자가 오고 그다음에 키 큰 남자가 온다는데 어떤 미친놈들이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지 아무래도 cctv 설치를 해놓아야 할까 봐요. 그래서 비밀번호도 바꿨어요."라고 마음의 소리를 최대한 누른 채 이야기를 했다. 비밀번호가 바뀐 걸 모르고 찾아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9월에 집이 계약이 되었고, 이삿짐센터에는 서울로 이사 간다고 해달라는 거짓말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선생님 사정으로 이사를 가게 됐으니 실업급여 신청을 해줄 수 없다던 원장님.

이삿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울리는 전화벨.

전화를 받지 않고 수신차단을 해버렸다.

나보다 12살 많은 띠동갑 원장은 땅따먹기 하는 이웃보다 더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으므로.


그곳을 떠나오면 사람에 대한 상처는 여기서 끝이 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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