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등원한 재석이는 오늘은 심통이 나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고모가 데리러 오신다고 했거든요.
평상시 재석이는 친구들 모두 가고 나면 혼자 남아 공룡으로 싸움 놀이도 하고
블록으로 비행기 로켓 등을 만듭니다.
그래도 재미가 없습니다.
뛰어다니면 다친다고 선생님께서는 앉아서 놀이하라고 합니다.
함께 놀이하던 선생님은 전화도 받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십니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눈웃음을 지어 보일 뿐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아빠가 오시려면 깜깜해져야 합니다.
뒹굴다 젤리도 먹고 미끄럼틀을 몇 번이나 타도 아빠는 오지 않습니다.
“이제 아빠 오실ㄴ시간 다되어 가네? 양말 신어볼까?”
선생님의 말씀에 재석이는 고개를 젓습니다.
양말을 신어도 아빠가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양말을 신자마자 아빠가 오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은 양말을 가져와 신겨 주십니다.
“혼자 신어볼까? 이제 제일 큰 형님이잖아”
그래도 재석이는 양말을 올리기 싫습니다.
내가 안 신어도 선생님이 신겨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띵똥!
“재석아! 아빠 오셨나 보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예쁘게 인사해보자”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대로 하기 싫습니다.
입을 삐죽이 내밀고 퉁명스럽게 앉으니 아빠가 자동으로 신발을 신겨 줍니다.
주먹으로 아빠 얼굴을 툭 쳤습니다.
아빠가 “왜 재석아?”하고 묻지만 화는 풀리지 않습니다.
“재석아! 맛있는 저녁 먹고 엄마, 아빠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내일 만나자”하고 인사하는 선생님은 모릅니다.
엄마, 아빠는 저녁을 먹고 나면 누워 있습니다.
내가 엄마를 툭 건드리면 “하지 마! 엄마 때리는 거 아니랬지?”하고 획 돌아누워 버립니다.
아빠한테 다가가 “아빠!”하고 부르면 텔레비전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왜?”
아빠 배 위에 올라가 뛰면
“아야! 아빠 아파. 저리 내려가!”라고 소리칩니다.
시무룩해진 재석이는 혼자 블록놀이를 합니다.
어린이집에서도 혼자 놀았는데 집에서도 혼자입니다.
엄마, 아빠는 일을 하시기에 피곤해서 함께 놀이할 수가 없습니다.
집에오는 길에 놀이터에 가자고 해도 배고프니까 밥 먹어야 한다며 집으로 곧장 데리고 갑니다.
엄마는 남은 찌개를 데우고 계란 프라이를 해주십니다.
어린이집에서 계란 먹었는데 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석이는
숟가락으로 밥을 쿡쿡 찍기만 합니다.
“너 밥 먹기 싫으니? 엄마가 먹여줄까?”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어도 엄마는 계속 계란 반찬만 줍니다.
밥을 먹고 나도 엄마, 아빠는 내가 놀이터에 가자고 한 것을 잊어버렸나 봅니다.
엄마, 아빠가 나를 꼭 안아준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이집을 나오면 아빠가 나를 번쩍 안아 차에 앉혀줍니다.
그렇게 안는 거 말고 가슴과 가슴이 닿게 안아 달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어떤 말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장난감을 던지고 소리도 질러 보았습니다.
엄마는 내가 피곤하고 졸린 것 같다면서 몸을 씻겨 주십니다.
샴푸가 눈에 들어가는 것도 물이 눈에 들어가는 것도 싫은데 엄마는 마구잡이로 샤워를 시켜 주십니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여보! 재석이 졸린 가 봐. 갈아입을 옷 준비해줘”
물로 헹군 뒤 나를 데리고 나온 엄마는 아빠에게 들릴 듯 말 듯
“옷 준비해 달랬더니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고. 나도 일하고 와서 힘들단 말이야.”
아빠는 엄마와 내가 있는 곳을 한번 쳐다볼 뿐 텔레비전 보는 것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있거든요.
엄마 옆에 누우니 엄마 냄새가 납니다.
이제 엄마는 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재석이는 기다려 왔습니다.
지금 엄마는 아까 엄마와 많이 다릅니다.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놀았는지 물어봅니다.
생각나는 친구 이름을 말했더니 “효준이랑 친하니? 저번에도 효준이랑 놀았다고 했잖아.”
으으응~ 아니라고 대답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재석이는 스스로 화장실도 다녀옵니다.
“재석아! 멋지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양말도 신어볼까?” 고개를 끄덕이는 재석이는
사물함에서 양말을 꺼내 혼자 신어 봅니다.
양말이 돌아가서 선생님이 올바로 신겨줍니다.
오늘 간식은 재석이가 좋아하는 케이크입니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나니 고모가 오셨습니다.
친구들이 남아있는데 내가 집에 가니 너무 좋습니다.
일찍 집에 가는 친구들을 바라만 보던 재석이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고모에게 다가가 안겼습니다.
신발을 꺼내 신겨주며 선생님은
“재석이한테 누구를 제일 사랑해? 하고 물으니 ‘고모 사랑해’ 하던대요?”라고 했어요.
고모는 “어제 하루 종일 놀이터에 데리고 갔더니 그런가 보네요. 재석이 엄마, 아빠한테 말해야겠어요.”
“재석아! 오늘도 고모네 가서 재미있게 놀아”하며 선생님이 인사를 합니다.
고모의 손을 잡고 가는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고모네 가서 누나들과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탔습니다.
누나들은 나한테 다 맞춰 줍니다.
서로 손을 잡겠다고 하고 허리를 굽혀 내 눈을 바라보며 “아이, 귀여워”라는 말도 해줍니다.
벤치에 앉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던 고모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줍니다.
모두 나를 주인공처럼 대해줍니다.
그래서 고모네 가족이 좋습니다.
내일도 어린이집에 고모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누나들과 놀이터에서 미끄럼 타고 고모가 밀어주는 그네를 탔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데 오늘은 고모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이 있다고 하는데, 고모는 재석이가 싫은가 봅니다.
나는 고모가 제일 좋은데 말입니다.
친구들이 모두 가고 양말을 꺼내왔습니다.
혼자서 신지는 못하지만 양말이라도 손에 쥐고 있으면 오지 못한다는 고모가 올 것 같아서입니다.
선생님께서 양말 신고 놀이하면 미끄러질 것 같다고 해도 양말을 꼭 쥐고 놓지를 않습니다.
선생님은 양말을 발에 끼워주고 올려보라고 합니다.
재석이는 혼자서 양말을 신어보려고 합니다.
양말을 올리고 기다려도 고모가 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아무도 없고 혼자 남아 선생님과 놀이하는 것도 재미가 없습니다.
고모는 왜 오지 않는 걸까요?
나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이하는 것도 싫습니다.
친구들은 재미있게 웃지만 나는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집에서 뒹굴며 고모와 놀이터에도 가고 내가 좋아하는 비눗방울 놀이도 하고 싶습니다.
고모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