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준비해 맞이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그 특별한 이야기
몇 해 전 아이가 킹크랩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하고 사주기에 벅찬 가격이라 다음에 먹자고 했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킹크랩'이라는 단어. 그때부터 한 달에 이만 원씩 종이상자에 넣어 크리스마스가 되면 킹크랩을 사서 '친정부모님'네로 갔다.
첫 해는 포장을 풀어놓자 이 큰 놈을 어디서부터 해체해서 먹어야 하는지 난감했다. 어른 남자인 친정아버지도 쳐다보기만 할 뿐 서로 눈치보기에 바빴다. 내가 팔을 걷고, 양손으로 다리를 뚝 떼어 가위로 두줄로 잘라 껍질 벗기기 좋게 해서 국물까지 맛있게 먹었다. 인생에 처음 맛보기는 70대 후반 할아버지나 10대 초반 손자나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낀 40대 후반 젊은? 딸의 해체작업은 처음치고 괜찮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종이상자에서 돈을 꺼내 킹크랩을 사러 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크로와상에 생크림 가득한 빵 두보 따리를 사서 차로 돌아갔다. 빵을 한 입 베어 무니 행복하다.
두 번째 미션은 친구 *경이가 보내준 아이스크림 쿠폰 사용하기. 4가지 맛을 골라 차에서 기다리는 노노에게 건네주었다. 아, 그래도 시간이 십 분이 남았다. 책을 가져온다는 게 빠뜨렸다.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어젯밤에 「데미안」을 놓고 토론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싱클레어가 '나'인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찌릿했던 경험은 나를 조금 성장시켰겠지? 헤세가 '융'말고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데미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1년의 결실 킹크랩을 부모님 댁에 풀어놓자 "이런 거 처음 본다"라고 말하는 엄마. 이제는 놀랍지 않다.
"엄마! 올해가 세 번째야. 오늘이 엄마가 이 집에 이사 와서 맞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야." 뭔가 이상하다 싶은지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엄마는 아랑곳 않고 역시나 잘 드셨다. 가스불을 켜놓고 물을 틀어놓는 건 아빠가 보는 즉시 잠그면 된다. 하지만 화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어느 날 친정 아빠가 마당에 있다 들어와 식탁에 앉았는데 상판이 따뜻해서 아래를 보니 엄마가 오방 난로(다섯 군데 모두 따뜻한)를 켜서 식탁 밑에 넣어 놓으셨단다. 다행히도 대리석 식탁이라 까맣게 그을린 부분이 누룽지같이 구워지고 상판이 따뜻한 것에서 끝이 났다. '절대 내가 난롯불을 켜지 않았다'는 엄마는 늘 결백하다.
화장대에 가서 화장품 바르는 순서대로 숫자를 써놓고, 선크림에는 '얼굴', 핸드크림에는 '손'이라고 크게 써놓은 게 서랍에 몇 개씩 들어있다. (없는 줄 알고 시내 나가면 또 사 오는 엄마.) 비상약에도 유통기한을 크게 써놓고, 용도를 크게 써놔도 엄마는 아빠한테 계속 묻는다고 한다. '너네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엄마에게 있어서 아빠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난 어젯밤에도 길을 잘못 들어 현충사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집에 왔다. 옆자리에 앉은 노노가 말한다. "엄마! 저번에도 엄마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 하면서 이길로 갔어."라고 한다. "어두워서 갸가 갸같아서 그래."
나는 정말 길치다. 공사를 마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나가는 길이 바뀌었는데 세 번 다 실패했다. 밝은 날 티맵 말고, 이정표도 참고하면서 잘 빠져나가 보리라 다짐했다.
나만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가 된마냥 이 문자를 받고 감동이 밀려와 눈가가 촉촉해졌다. 입학식 졸업식 날도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아이가 대견하고 또 내가 대견해서다.
걸어서 교복 맞추러 가자고 했더니 엄마 차를 타고 가고 싶다는 노노. 걷기 싫으면 버스 타고 가자고 했더니 엄마 차를 타고 가겠단다.
언덕을 올라 겨우 주차를 했는데 아무래도 주정차 금지구역이라 마음이 캥켰다. 저 앞에 그려진 주차라인이 그려진 곳에 주차를 하고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가서 교복을 맞추고 왔다. 딱 맞는 것을 골라준 주인아저씨께 한 치수 큰 걸 달라고 했다. 중학교 때도 넉넉한 걸 입었지만 몇 번씩 터져오는 바지는 1년을 못 버텼다.
"엄마, 내 키가 또 자랄까?"
"엄마 생각에 넌 190 찍을 거 같아." (현재 3cm가 모자란다.)
"이 교복이 작아지면 다이어트해야겠지?"
"다이어트 생각 말고 30분 정도 거리는 걸어 다니자."
못 들은 척 노노는
"아, 엄마 차가 너무 편해. 난 엄마 차가 제일 좋더라."
"그래 12년 됐지만 네가 좋다니 잘 타고 다니다가 너 운전 연수할 때 빌려줄게."
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도 옆에서 만세 부르며 "좋다"를 외칠 날을 기대해 본다.
나도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 옆에 타고 "어빠, 달려!!' 외치고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