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내 알바 아니오!

어쩌다 이혼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by 솔담

방 한편에 놓여있는 전자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없는 듯 방치되어버린 물건. 내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게 되면 어떨까?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겠지만 익숙함에 잊혀가는 사람이 되겠구나.


블로그를 하다가 브런치로 옮겨오며 내면의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혼에 대해 혼자라는 쓸쓸함에 대해.

포장을 벗겨내니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냥 써 내려가는 내 글이 좋았다. 양육 앞에서는 '너를 닮아서 그래!'하고 미룰 상대가 없기에 내가 오롯이 받아들여야 할 과정을 만들어가야 했다.


어느 사람은 드러내지는 않아도 이혼이라는 비극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도덕적인 인간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이혼이란 소통의 부재에서 상처로 마무리되며 소통의 과제를 남긴다.


당당하고 씩씩하다는 소리를 듣는 내가 보여주는 언행에는 병들어가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 날 때가 있다.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세상살이는 외롭고 고독하다. 동틀 무렵 세상의 빛이 나와 닮았다. 듬성듬성 불이 켜져 있는 옆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나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거실 불을 끄고 빛을 응시했다. 아프다.


내가 알을 깨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알을 깨면 프라이가 된다고 했다. 이혼을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프라이가 되었다. 내게는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카펫을 들고 나와 펑펑 두드리며 산속에 울리는 공명함의 소리에 내 울음이 묻혀가기를 바랐다. 어둠과 적막함이 내 인생의 앞날이 아니기를 바랐다.


치과 가기 싫어 터덜터덜 걷는 아들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갔다. 다음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열일곱의 아들이 다가와 말한다.

"엄마, 왜 나 버리고 갔어." 푸흡~

"버리고 가긴, 엄마가 빨리 걸어온 거지"

"그게 버리고 간 거지."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들과 지내고 있으니 내 영혼이 맑아진다. 아직도 내가 깨야할 알껍질은 무수히 많이 남아있다. 이혼한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혼자 사는 여자의 쓸쓸한 마음을, 노동자의 고된 아픔을, 사춘기 아이의 일탈을 겁내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 쉰 하나의 어른에게는 그마저도 어렵다. 하지만 괜찮다.

싱글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안겨준 아들이 있으니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 오하라를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

남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나도 그렇게 내뱉고 싶다.

이혼?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 하지만 사랑의 기술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오. 당신들의 시선이 익숙함이 되어 마음에서 잊히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