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나입니다.
가끔은 엄마 말고 그냥 나
다시 2주 전으로 돌아가도 아이의 선택을 인정하는 내가 되었을까?
자퇴 후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자퇴 허락했어?'
'네가 학교에 가면 죽을 것 같다는 그 말에서 더는 안 되겠다 싶었지.'
'나를 믿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게 아니라 죽을 만큼 힘들다는 거였어.'
아이를 쳐다봤다. 이미 늦었다. 널 믿는다는 말을 먼저 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아이의 감정보다 이기적인 내가 되어있는 나.
'믿는다는 거 그거 참 무서운 말이야. 내가 너를 믿는다는 말을 먼저 했다면 넌 그 말에 부응하기 위해 또 힘들어질 수도 있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뭐가 되려 하지 말고 뭐를 하려고도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하고 몸이 가는 대로 살아보자.'
대답 대신 나를 꽉 껴안는 것으로 대신하는 아이.
판사님이 물었다.
'양육비 정말 안 받아도 되겠습니까?'
'네, 양육비 안 받아도 저 사람보다 더 잘 키울 자신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우리 집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8일째 매미 287p-
책 내용과 내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그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다.
'괜찮아, 자퇴한다고 해서 다 실패하는 건 아니야.'
'노노가 참 이기적이네. 엄마 고생했으니까 내가 성공해서 엄마한테 잘할게. 이런 마음 하나도 없대?'
'잘됐네, 밥하고 청소하고 엄마 기다리라고 해. 집에 있으면서 그것도 안 한대?'
'우리나라 교육이 안 맞으면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외국 가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아.'
'노노는 똑똑하니까 잘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팠다.
이제 17살이지? 사춘기잖아. 이제 시작이야. 군대 가기 전까지 한 3년 정도만 기다려. 그러면 조금 달라질 거야. 설거지? 청소? 남자애들 스무 살이 넘어도 아무것도 안 해. 밥 먹은 거 그대로 놓고 반찬 뚜껑도 안 닫아.
난 이 말에 힘을 얻었다.
다른 집 아이들도 그렇단다.
그리고, 메일로 응원해 주신 한*아님!!
너무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사랑하는 보통씨[알랑 드 보통]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 모두들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변했다.
아이와 큰소리로 논쟁을 벌였고, 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독서 대신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
그리고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까지 달렸다.
눈물이 났다.
혼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고 해서 맥주를 사다 주었다.
여행길에 질끈 머리를 묶었는데 흰머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물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물보다 훨씬 더 깊어 보였다.
새벽 산책길에 만나는 초록의 푸르름은 한낮의 색보다 이슬을 머금어 질퍽했다.
들어가지 말라는 공사 중 팻말을 무시하고 들어갔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듯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괜찮다.
가끔은 이렇게 '나'로 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