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 친구가 그리웠다. 한 동네 살다가 친구가 호주로 이민을 가고, 한 달 뒤 나는 P시로 이사를 왔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처럼 우리는 아무 때나 지나다 집에 불쑥 찾아가도 괜찮았다. 술 한잔 마신 친구가 '나 데리러 와라!'라고하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땐 남편 없는 우리 집이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부스럭부스럭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낸 맥주를 마셨다. 낮에 만나 했던 이야기는 밤에 또 이야기해도 고개를 끄덕이고 재잘거리게 했다.
19일 부처님 오신 날에 만나기로 했다. 하룻밤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면 좋으련만 친구는 내가 힘들다며 그날 보자고 했다. 배려에도 서운함이 있다. 이제 좀 마음이 추스러져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안 추스러져도 연락해도 되는데 8년이란 시간이 마음 추스러야만 하는 그런 사이를 만든 걸까?
그래도 뭘 입고 갈까? 마음이 설렌다.
어제 오후 두시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며 '아싸, 신난다. 드라마 보고 영화 보며 놀아야지. 일하고 와서 이렇게 즐기는 게 사는 거 아이겠습니까'
침대에 어정쩡하게 누워 유튜브를 보던 아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 엄마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의 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즐기십시오!'라는 성의 없는 대답을 한 뒤 보던걸 마저 봤다.
무슨 의식이라도 된 듯 샤워를 하고 젤리와 과자가 담긴 상자를 끌어안고 왕대륙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물 마시러 나온 아들은 '또 얘 나오네?'라고 했다. 그렇다, 난 왕대륙을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왕대륙의 미소가 좋다.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들어와 겨우내 입었던 파자마를 벗어던지고 원피스를 입고 누웠다. 다리가 좀 서늘했지만 맨살의 부딪힘이 좋았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이렇게 행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6시 30분. 낮잠이라 하기에는 늦고 내일까지 자면 억울할 것 같아서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펼쳤다. 환한 형광등 불빛도 소용없었다.
'아들~~~ '하고 불렀더니 잽싸게 달려온 노노에게
'엄마방 불 꺼줘. 너무 졸려. 그런데 내일까지 자면 어떡하지? 아깝다.'는 말이 체 끝나지도 않았는데 불 끄고 방문을 닫고 노노는 가버렸다.
우수관의 물 내려가는 소리에 깨서 휴대폰을 보니 8시다. 하하하! 성공했다.
다시 [사는 게 뭐라고]를 보며 나만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서 큰 위안을 받았다. 65세되면 시골에 내려가서 쪼그리고 앉아 풀 뽑고 꽃에 물 주는 그런 삶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열심히 근육을 키워야겠지? 일주일에 세 번 라인댄스를 하고 돌아오는 길 달빛 아래서 놀이터에 있는 운동기구에 매달려 열심히 달리는 나를 칭찬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마음 다잡기 위해(아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까 봐) 시작했지만 이제는 습관이 돼버린 놀이터에서의 시간. 뭘 하던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