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주인공 윤수는 우리들일 수도 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를 감히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죄의 크기를 감히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믿음의 깊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 걸까?
아빠의 폭력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는 윤수와 은수의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몇 번을 읽어도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이 책은 나를 닮았기 때문일까?
맞고 때리고 부수고 울고 도망가는 일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나날이었다.
무서워서 잠든척하고 누워있는 머리 위로 떨어지던 선풍기의 소리, 12월 꽁꽁 얼어붙은 논둑에 팔다리를 큰 대자로 뻗으며 최대한 땅에 붙이려 노력했던 그날 밤, 도망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던 그 밤의 가로등 불빛, 교과서가 활활 타오르며 날리던 종이재들, 물이 마른 하수구 안에서 추위를 피하던 그날 밤, 모르는 동네 들마루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헉헉대며 아팠던 그날 밤, 시장 뒷골목 어두컴컴한 여인숙 입구, 이웃집에 숨었는데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 그리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두 장면......
십 대의 나는 그런 얼룩으로 물들어 있다. 그날의 나는 검은 실루엣만 남아있지만 그날의 공기들은 아직도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폭력적인 사람의 어린 시절에 폭력이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폭력성을 어디에 꽁꽁 숨겨두고 있을까?
행위는 사실일 뿐, 진실은 늘 그 행위 이전에 들어 있는 거라는 거, 그래서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무언가가 떨어질까 봐 벽에는 작은 액자 하나 걸지 못하는 나는, 누군가가 장난으로라도 툭 치면 몸을 피하며 정색하는 표정으로 변해버리는 나는, 큰소리가 나면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맞잡는 나는~
어느 점에서 시작되었을 아픔의 사건이 내 마음을 모두 시커멓게 잡아먹었다.
엄마가 피아노 레슨비 15,000원을 빌려서 내게 건네주던 10살의 5학년이었던 나는, 학원에서 몇 시간을 피아노를 치다가 돌아왔다. "엄마, 나 이제 피아노 학원 다니기 싫어. 재미없어."라며 엄마에게 레슨비를 다시 돌려주었다. 길을 가다가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멈춰 서서 들었다. 부러웠다.
철이 늦게 들었더라면 예정대로 예중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지금과 다른 미래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가 그랬다. 미래는 두 밤 사이에 있는 낮이거나, 두 낮 사이에 있는 밤일 거라고.
미래가 그렇게 가까운 것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미래는 적어도 10년 뒤 즈음이다.
그때는 무언가가 지금 하고 달라져있을 수도 있는 확률의 거리다.
집이 궁상맞아서, 벽지가 더러워서, 의자들이 낡아서, 커튼이며 시트가 싸구려 천이어서 괴로웠다.
-기드 모파상의 [목걸이] 중에서-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나로 인해 아이가 아픔을 겪고 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어서이다.
모파상이 말하는 저 여인의 괴로움은 나에게 사치다.
상담 선생님이 아프셔서 어제 노노의 상담이 갑자기 연기가 되었다.
미뤄 왔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살만 조금 빼면 좋겠고 근력운동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아주 근사한 걸 먹는 것도 아니고 배고프면 늦은 밤일지라도 밥에 김치를 먹는데, 배고픔은 참지 않기로 했다, 고 노노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월급날이면 엄마는 쌀집 앞에 서계셨다.
나는 쌀 한말이든 누런 봉투를, 엄마는 월급봉투가 든 가방을 품에 안고 걸었다. 월급은 모조리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 대출이자와 같았다. 늘 배고팠고 부족했다.
12시가 넘어서 노노가 스파게티가 먹고 싶단다.
그런데 살찔까 봐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기다려, 엄마가 해줄게.
살 빼란 말을 들은 지 하루도 안 지났지만, 168에 65kg에서 더 찌지 않음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피자치즈를 쭉쭉 늘려가며 스파게티를 먹었다.
안 먹는다는 노노까지 꼬셔서 함께 먹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