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거는 희망이 참 크다.
엄마는 지금처럼 곁에 있으면 된다.
어떤 슬픔도 사람은 언젠가 잊어버린다. 상처는 언제까지고 아픈 것은 아니다. 상처는 기억이기도 하니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중에서
지우개로 지우면 깨끗하게 지워졌으면 좋겠다. 아이의 상처는 내게서 왔으므로.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자퇴 후 엄마 말고 유일하게 만나는 어른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유일한 편.
'오늘은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할까?'라고 내심 기대하는 아이에게
'이야기는 네가 하는 거 아냐?'하고 대꾸해 버렸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마음이 선생님의 호명에 일어나 나가는 아이의 등을 보니 아차 싶었다.
'선생님 만나는 게 기대되는구나?' 이 한마디면 됐을 텐데, 나는 참 많이 부족한 엄마구나. 아이를 기다리는 한 시간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혼을 하고 나면 그래도 살아갈 힘을 얻는 데까지 2년이 걸린다고 한다. 자퇴한 아이도 학교라는 버팀목을 상실했으므로 2년이 걸릴 거라고 한다.
나는 이혼을 하고 살아야 하기에 어떻게든 버텨냈었지만 너덜 해진 마음은 어찌할 수 없어 밤마다 울었더랬다. 정해진 틀 없이 시간이 여유로운 아이의 자퇴 생활은 당연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단다.
잠도 많이 자고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언젠가는 훌훌 털고 일어나 또래의 아이들처럼 밖으로 나가는 날을 기다려볼 참이다.
아이는 문장을 완성하라는 문제지에
어머니는 지금처럼 곁에 있으면 된다, 고 썼고
아버지에 대한 글은 공백으로 두었다. 얼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판에 글로 쓰는 건 무리인 듯싶다가도 1년에 한 번쯤이라도 억지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지 못한 내게 화가 난다.
'엄마, 얼마 전에는 아빠가 보고 싶었거든 이젠 그런 마음이 없어졌어. '
아이는 자퇴를 한 후 아빠 이야기를 부쩍 많이 했다. 만나면 쑥스럽고 어색할 것 같아 싫다고 했지만 보고 싶었나 보다. 보고 싶다, 는 단어를 꺼낸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슬쩍 피하지만 내게는 아직 어린아이 같다.
아이에게 아빠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한건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에게 미룬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는 지금 상담을 하고 있다.
이 시간에 거는 희망이 참 크다.
노노가 읽고 엄마도 읽어보라며 건네준 책 [오늘 밤, 세게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에 나온 말처럼
인생이라는 무수히 많은 페이지의 한 장인 오늘 나는 아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