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앙상하게 남아있는 지금을 사랑하자.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아이가 받은 종합심리검사 결과는 나왔는데, 상담 선생님은 11월 한 달을 병원에 계셔야 해서 상담을 할 수 없단다. 대학 부설 상담센터라 다른 선생님도 계셨지만 그래도 노노가 마음의 문을 연 선생님이기에 기다려야 했다. 영어로 된 아이의 병명은 낯설었다.
검색해서 겨우 알게 된 지식백과의 내용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좀 더 현명한 엄마였더라면 하는 후회에 눈물을 흘렸다.
아빠랑 자랐더라면 아이가 강하게 컸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외도한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을 때 내 조건은 하나였다.
양육권을 나에게 넘기는 것.
상처 많은 내가 이이를 키운다는 건 과한 욕심이었을까? 맞다. 욕심이 지나쳤다.
아빠가 소리만 질러도 오줌소태에 걸리던 나는 단골약국에서 약을 자주 지어먹었다.
불안했고 아팠고 무서웠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손에 쥐어준 건 신경안정제였다.
나에게 맞지 않는 엄마가 어디에선가 구한 약이었다.
그 약을 삼키며 지냈다.
15살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방송부원이 되었고 음악이 있는 그곳이 좋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지만 엎드리라고 해놓고 선배들이 엉덩이를 때렸다. 군기를 잡는다고 했다.
때리니까 그냥 맞았고 불안하면 가끔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졸업한 방송부장 선배를 선생님이라하고 방송부원들과 1박 2일로 단합대회를 가기도 했다.
나의 첫 거짓말이었다.
20대 후반에 신경정신과를 처음 찾아갔다.
13층 베란다에서 발을 내딛으면 주차장에 닿을 것 같았다. 살고 싶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입원실도 있는 그런 병원이었는데, 조금 무서웠다.
엄마와 의사 선생님이 내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내 병명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약을 처방받았고 나는 먹었다.
병원을 꾸준히 다니기에 나는 넉넉하지 않았다.
서너 번 가다가 만 그곳이지만 삭막한 기운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맞지 않는 약을 먹으면서도 나는 학창 시절을 잘 버텨냈고, 맞는 약을 먹으면서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야!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아이와 지냈고, 아이는 싫다! 는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자랐다.
그것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아이에게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낼 줄 아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우리는 숨기고 서로에게 맞춰주느라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앞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가 문을 열고 혼자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오늘도 집안에서 휘파람 부는 아들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힘을 내본다.
사랑스럽다.
다시 오지 않을 아이의 10대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쉽다.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아이만큼은 정말 행복하게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노노야, 많이 힘들지?
지금은 쉬는 시간이라 생각하자.
무수히 많았던 잎을 떨구며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 버려버리고 새로운 그날을 위해 앙상하게 남아있는 지금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