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있다.

자퇴를 하고 나니 지금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by 솔담

'엄마는 쉬는 날 이상하게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아. 일하러 갈 때는 아침을 조금이라도 먹고 12시 되면 점심을 먹거든.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두통약을 먹었더니 오히려 토할 것 같은 증세가 더 심해졌어.'

'그럼, 오늘 상담 가지 말까?'

'아냐, 가야지. 몇 달 지나면 노노 혼자 버스 타고 갈 수 있겠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은 웹소설에 가있는 노노.

혼자 간다는 말에 '아니야'를 말하지 않아 안도감을 느꼈다.


'저는 학생들이 오히려 지내기 쉽다고 생각해요. 시간표대로 움직이면 되잖아요. 노노같이 학교 밖 청소년들이 지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노노가 그걸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둔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알고 계시는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두 손 모아 인사드렸다.


나의 걱정과 불안 때문에 아이의 문제를 올바르게 보지 못했다. 내가 반응한 하나하나가 모여 아이는 더 불안했겠지. 이렇게 또 상담을 통해 나도 조금씩 성장해 간다.


내가 이이들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는 그들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거라 믿으란 뜻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뭘 어떻게 해도 넘어지게 되어 있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내 말인즉슨, 아이들의 고무줄 같은 탄성을 믿어보자는 것이다.
-대니얼 고틀립의 [마음에게 말 걸기] 중에서-


노노는 또래들보다 먼저 넘어졌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일어나보려고 시도해 보면서 원하는 것을 말할 테고 부모인 나는 왜곡하지 않고 듣는 연습을 하면 된다. 희망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지금의 상황이 혹시나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조차 사치라는 것을 자퇴 한 아이와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희망이 없음이 곧 절망이 아니듯 자퇴하면서 지금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노노야, 그나마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네가 넘어져서 다행이야. 이십 대 삼십 대가 되어 지금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더라도 엄마는 너를 믿겠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나이, 그 나이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 충분히 생각하렴. 충분히 즐기렴.


삶은 움직이고 흔들리는 데 뜻이 있다. 견고한 것, 딱딱하게 굳어진 것, 움직이지 않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 것에 우리는 희망을 걸 수 없다.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중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그냥 바람에 비에 몸을 맡기고 그냥 흔들리다보면 바람한점 없는 맑은 날을 맞이하듯이 네게도 그런 날이 올거란 것만 믿자.

이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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