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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Dec 12. 2021

집이 편안해야 합니다.

아, 그래서 소라게도 누군가 건드리면 집안으로 쏙 숨어버리는구나~

공용 배수관에 누수가 있어 1층인 우리 집 벽을 뚫고 작업을 해서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역시나 노노는 밖에 나오지 않아 여차하면 요강을 대신할 어떤 것을 넣어주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목, 금 저녁은 세탁실 짐을 여기저기로 옮기느라 분주했다. 지금도 앞 베란다는 피난 떠나는 집처럼 라면, 통조림, 1회용 죽, 3분 카레 등등이 널려있다. (잘 먹지 않는 노노가 갑자기 먹고 싶으면 골라먹으라고 준비해놓은 비상식량이다.)


12시쯤 시멘트 바르는 작업까지 1단계가 끝나서 공사 뒤에 남은 먼지 제거작업은 내 몫이 되었다.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식탁을 제자리에 옮기 고나니 팔이 덜덜 떨려서 소파에 누워버렸다.


삼일 동안 탄산수와 귤만 먹은 노노는 닫았던 방문을 열고 난 뒤에도 소변을 보지 않았다. 소변을 참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이의 몸은 수분 배출조차 어려워하고 있었다.


토요일 5시쯤이라 그런지 상담센터 주변은 조용했다.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는 길에 '엄마, 노을이 참 예쁘지?' 하는 노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 폈다며 산수유와 목련 사진을 찍어 보내주던 중학교 1학년 때의 노노가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밤 혜성이 보인다던데 구름이 많아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아쉬움 가득한 말에 능력이 된다면 구름을 걷어내고 싶었다.


노노가 상담하는 동안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 책을 읽었다. 피곤해서 눈이 감겨 벽에 머리를 잠시 기대기도 했다. 모두 돌아가고 텅 빈 대기실에서 '오늘도 나아지는 과정 ' 이 한 문장에 위로를 받았다.

내가 제일 힘들다.

'노노가 오늘 공사 아저씨가 오셔서 마음이 많이 불안했대요. 남자 어른에 대한 불안감이 많아요. 다행인 건 종합심리 검사할 때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4시간 되는 검사를 마쳤다는 거죠.'

'저도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거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은데, 오늘은 어쩔 수 없었어요.'

'집이 편안해야 합니다. 노노에게 집하고 노노 방에 있으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편안하다고 했어요.'

편안하다는 그 말만으로 안심이 돼서 활짝 웃었다.

'집하고 방에서 충분히 편안함을 느끼고 충분히 쉬어야 밖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네, 노노가 먹지 않으니 영양소 부족으로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엄마니까 걱정되시겠지만 그것도 경험이에요. 제가 이번에 아팠잖아요? 아프고 나니 또 얻는 게 있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노가 물었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돼?'

아빠와 헤어진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두 번이나 쓰러졌던 노노가, 엄마도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울던 6살의 노노가 생각이 나서 뜨끔했지만 용기 내어 물었다.

무지한 엄마라 읽어주고 또 읽어주며 책에 의존을 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주변에 친척들이 돌봐주기도 해.'

'그런 친척이 없는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생활해. 보육원 선생님이 부모님 역할을 해주시고. 엄마가 지*어린이집 다닐 때 엄마반에 보육원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3명 있었어. 그 친구들도 지금 17살이겠다. 노노와 나이가 같았거든.'

잊고 지냈던 아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뚜렷하게 기억이 났다.


노노야, 20대 30대가 되어서 네가 그런다 해도 엄마는 괜찮다고 할 거야. 더군다나 지금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네가 지금 그런 나이야.

글로만 썼던 걸 말로 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으응~이라고 길게 대답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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