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열차와 완행열차 사이에서

어떤 속도로 가도 도착지점은 같은 인생

by 솔담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세계는 사실이 어떻든 억지로 만들어내야 하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영혼을 소중히 소중히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리 마리-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내가 주로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니 이삼십 대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지난날을 잘 보내지 못한 것만 생각하며 과거가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만났다. 그 나이 때를 잘 지내고 있는 그들을 동경하면서.(그들은 '싫으면 싫다, 좋은면 좋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런 그들이 너무 부럽다.)


지난 시절에 매달려있는 나.

육십 대가 된 나는 그때도 이십 대를 그리워할까? 오십 대를 그리워할까?

그냥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버거울 때가 많다.


어릴 때는 세상의 전부가 엄마였다.

엄마가 되고 나니 세상의 전부가 아이가 되었다.

세상의 전부인 '나'를 만나는 날을 욕심내어 본다.

술 깨는 약을 먹으면 숙취에 도움을 받듯 과거로부터 도망쳐 나올 마법 같은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안의 아이와 현실의 내가 만나는 지점은 언제일까? 끝내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사이의 격차가 줄었으면 좋겠다.


저번 주 토요일에 퇴근 후 빗길을 뚫고 친정에 다녀왔다.

티격태격하는 초보 농사꾼 두 분의 텃밭은 초록이 무성했다. 점점 작아지고 등이 많이 굽어있는 엄마와 아빠의 소박한 식탁은 그대로였다. 그냥 두분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모자란 퍼즐 조각처럼 잘 맞춰지지 않는 부모님.


상처를 준 자와 상처를 받은 자가 존재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불이 상처를 덮어버렸다. 그래서 상처를 준 자는 없고 받은 자만이 넘어가지도 않는 상처를 힘겹게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누구는 고속열차처럼 누구는 가끔 다니는 완행열차처럼 살아간다.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가더라도 도착지점은 같은 인생이라는 길.

혼자 가는 길이라 많이 외롭지만 언젠가는 옆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그 사람을 기대하며 덜커덩거리는 열차에 올라타야겠다.

몇 년 전 흙을 파서 돌을 깔아 길을 만들었는데, 그 사이로 잔디가 자리를 잡아 예쁜 길이 만들어졌다.

몇 년 뒤 내 인생도 예쁜 길 위에 서있기를 바란다.


멋대로 행복해지기 까짓 거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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