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인생의 소나기가 내린 날
자다가 한기가 들어 눈을 뜨니 밤 11시 55분. 이불을 끌어당겨 어깨까지 덮었는데도 추웠다. 혹시?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먼저 들어 열을 재보았는데 정상이다. 더워서 눈을 뜨니 3시 20분. 선풍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또 잠에 빠져들었다. 평상시보다 5분 늦게 출근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팀장은 내 얼굴을 보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난 밤새 끙끙 앓았다고 했다. 집에 가서 쉬라는 말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일도 출근하지 못할 것 같아 링거라도 맞을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병원 입구에서 잰 체온이 37.7도라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단다. 그늘이 있는 곳에서 주저앉아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10분 뒤 체온은 더 올라 있었고 선별 진료소 가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길 건너 보건소로 발길을 돌리는데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노노는 어떡하지? 아픈 나보다 자식 걱정이 앞섰다. 집하고 회사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는데 회사 문 닫고 방역하느라 영업을 못하면 얼마나 손해를 볼까? 아픈 나보다 회사에 미칠 영향이 걱정되었다. 주차장에 마련된 임시 선별 진료소에 갔더니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여학생이 검사를 받고 있었고, 접수하는 곳 뒤에는 털썩 주저앉아 있는 의료진이 보였다. 머리는 다 젖었고, 양쪽에서 두 명이 팔을 주무르고 냉풍기를 모두 그분 방향으로 돌려놨는데도 얼굴이 뻘갰다. 말로만 듣던 의료진들의 노고를 눈으로 보고 있자니 검사를 받는 내가 미안했다. 내 아픔은 아픔도 아니었다.
'가족은 어떻게 해요?'
'아직 확진된 거 아니니까 가족은 함께 있어도 괜찮아요.'
집으로 돌아와 또 잠을 자고 노노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또 잠을 잤다. 링거만 맞으면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지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손발에 힘이 풀려 덜덜덜 떨리는걸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저녁을 먹고 나면 미처 소화가 되기 전에 잠들었다. 피로가 누적됐는데 일요일 하루 쉬는 걸로는 몸이 버티지를 못했나 보다. 검사받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를 거의 잠으로 보내고 맞은 평일 아침 8시. 평상시면 땀 흘리며 청소하고 있을 이 시간이 참 소중했다.
베란다 나의 공간에 앉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는 세상도 감옥이 아닌가 싶었다. 공간의 크기만 다를 뿐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다.
계절을 글에 담고 편지를 쓰고 책을 읽는 일도 훌륭하지만 그냥 누워서 쉬는 것도 괜찮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어떤 결과물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나는 단어들을 담아내도 괜찮다.
9시가 다돼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고 바로 출근했다.
10시쯤 일어나 아침으로 노노와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어쩜 이렇게 맛있게 해?'
'너는 어쩜 이렇게 맛있는 말을 해?'
아들과 둘이 앉아 웃으며 점심은 뭐 먹을 건지 이야기했다.
먹보 엄마와 먹보 아들이라며 또 웃었다.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다. 타닥타닥 소리가 너무 좋다. 내 삶에도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다. 우산 없이 흠뻑 맞은 인생의 소나기는 아직 덜 말랐지만 그래도 괜찮다. 몇 번의 소나기가 더 내리겠지만 소리만으로도 시원한 삶을 살 테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게 덜 미안해하고 몸과 마음이 약한 엄마라고 덜 미안해해야겠다.
"산다는 게 뭘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