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랑 드 보통의 인생학교|섹스|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 말

by 솔담

‘혼전순결은 꼭 지켜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고 자란 71년생인 나에게 섹스는 곧 결혼을 의미했다. 첫날밤 아니러니 하게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몰래 숨어서 할 때 느끼는 죄책감이 엄습했다.


성장하면서 결여된 내면이 용솟음 칠 때면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나는 죄인이어서 섹스 자체가 죄질이 되었고 불안했다. 나의 결혼생활은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는 말이 현실이었다. 나와 그 사람의 열매 속에 숨어있는 벌레는 야금야금 평범함을 갉아먹었다.


10대 초반에 동생과 둘이 남겨진 나는 어떻게 하면 엄마가 나를 데려갈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아빠의 술주정도 잘 들어줘야 했고, 동생도 잘 돌봐야 했고, 학교도 잘 다녀야 했다. 잘못해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내 깊은 곳에 잠재해 있었고, 엄마가 맞춰놓은 틀에 착착 들어맞는 상품이 되어야 했다.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된 엄마는 밤에 삼 남매를 데리고 경찰서장을 찾아갔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뒤 아빠는 경찰을 그만두었고 우리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 언니를 데리고 엄마는 두 번 집을 나갔고, 큰엄마를 통해 몰래 엄마를 만나고 헤어지던 들판에 서있는 동생과 나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우리도 데려가라고 매달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했으니까......


그 남자의 외도를 알게 된 후 나는 엄마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하려 했다. ‘너는 고상한 척하고 있어. 우리가 가서 살림살이 부순다니까?’ 하는 친구에게 싫다고 했다. 우리의 섹스는 순탄치 않았으니까 정말 고상 한 척 한 걸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결혼생활에 실패했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한마디로 결혼생활은 침대 시트와 비슷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네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다. 한쪽을 제대로 펴놓으면, 다른 쪽이 더 구겨지거나 흐트러지고 만다. 그러므로 완벽을 추구하면 곤란하다. 213p


알랑 드 보통의 인생학교 시리즈 중[섹스]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토록 섹스에 움츠려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40년대 부모의 관점을 70년대인 내가 그대로 믿고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가 결혼생활 실패에 큰 이유였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뱉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남자의 외도가 당연시되는 것 또한 아니다.


며칠 전 비 오는 저녁에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났다고 노노가 말을 꺼냈다.

만나보라고 했지만 선뜻 연락하기까지 많이 망설여지나 보다.

어제는 "나쁜 놈이잖아"라고 한다.

"엄마에게 나쁜 놈이지만 너한테는 아니야."

"그런가?"

"만나서 아빠네 집도 놀러 가고 그래. 거기 가면 여동생 두 명도 있을 거야."

"그래도 되나?"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