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신고합니다.
[골목길]에 얽힌 이야기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가 언니를 데리고 집을 나가면서 남동생과 숨어있으라고 얻어 준 단칸방을 아빠는 쉽게 찾아냈다. 찰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열쇠를 챙겨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억누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빠는 잠든 척 한 우리를 흔들어 깨워 술 심부름을 시켰다.
술을 사다 드리고 우리는 아빠를 피해 겨울이면 물이 말라버린 하수구 안에 숨기도 하고 논둑에 큰 대자로 엎드려 숨기도 했다. 그러다 아빠에게 들키면 냅다 달아났다. 도망가야 하는데 본드를 붙여 놓은 듯 발이 제자리에 있기도 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우리를 찾는 목소리가 멀어지면 그때서야 일어나 집 근처 골목에 숨어있다가 아빠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누나, 아빠를 죽이면 우리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안돼! 우리는 나쁜 사람 되면 안 돼. 아빠가 그러니까 자식들도 그렇다는 소리 듣지 말자.”
“엄마 보고 싶다. 그렇지?”
두 살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열세 살 나의 눈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누나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고기 만 원어치 사줘. 나는 누나가 좋아하는 엿을 만 원어치 사줄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과 새끼손가락을 결면서 버텨나갔다.
만 원어치 고기와 엿은 우리의 미래였고 희망이었다.
나쁜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산꼭대기 어두컴컴한 골목에 16분 음표보다 더 빠르게 뛰는 숨을 고르고 있는 아이가 있다.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만 남아있는 눈은 두리번두리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가 나와서 따듯한 집으로 데리고 가주지 않을까? 상상하는 아이를 마주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돼. 괜찮지 않아도 돼.
울어도 돼. 크게 울어도 돼.
아, 악!!!
빈 허공에 울리는 소리는 아픔이었고 발악이었다.
“나의 고고한 천재성을 빼고는 달리 신고할 것이 없습니다.”
스무여덟 살의 오스카 와일드가 뉴욕 세관에 도착했을 때 했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질문을 해준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한 '나'를 신고합니다.
아빠를 피해 숨던 서울의 골목길은 엄마가 있어서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아빠를 죽이겠다고 가슴에서 칼을 꺼내던 어린 남동생을 안고 울던 시골 산언덕의 골목길은 괜찮지 않았습니다. 운 좋은 날에는 동생과 이웃집에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답니다.
오늘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며 '만 원어치 고기와 엿'이야기를 했습니다.
전국체전 육상선수였던 아빠에게서 도망친 덕분에 우리가 달리기 잘하게 됐다며 농담도 했지요.
40여 년 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를 안아 줄 수 있게 [골목길] 이벤트를 만들어 준 카페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