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갱년기 증상으로 옆자리 팀장은 귀까지 뻘겋게 달아 올라 아휴 더워, 아휴 더워를 외치다 병원의 도움을 받았다.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아? 좋겠다. 난 자다가도 몇 번씩 깨서 힘든데'라며 부러워했다. 그 부러움을 받던 언니인 내가 두 달 전쯤부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몸에 열이 확 오른다. 처음엔 더워서 그러나 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얼굴에 등까지 확 올라오는 느낌이 더위와는 달랐다. 나도 여성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나? 망설이다 도움이 되는 음식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중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
검.
정.
콩.
장날에 가서 뻥튀기를 해와야겠다 생각하며 1,6일이 들어있는 토요일을 찾아봤는데 마땅치 않아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다. 검정콩보다 더 좋다는 국산 100% 쥐눈이콩볶음이 도착했고, 작은 지퍼백에 소분해서 가방에 넣었다.
요즘 인수인계 때문에 별 보고 출근 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으으, 거기에 갱년기 증상이라니. 노노만 붙잡고 엄마 힘들어, 엄마 힘들어를 외쳐댔다. '응, 그래?'라고 아무 감흥 없는 대답을 하고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이고 어머니 많이 힘드시겠어요.'라고 공감하는 대답을 들으면 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는 갱년기니까.
퇴근하는 길 배도 고프고 졸려서 하품을 연신하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쥐눈이콩이 생각나 가방을 뒤졌다. 으하하하, 네가 갱년기를 잡는다던 그놈이냐? 신호대기할 때 한주먹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작아작 씹는 소리만큼 갱년기가 사라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날 밤부터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다음날도 밥을 씹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잇몸이 안 좋은가 보다 생각하고 잇몸에 좋다는 치약으로 평상시보다 꼼꼼하게 이를 닦았다. 통증으로 몇 번이나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카더라통신에서 치통에옥수숫대가 좋다고 한다. 혹시 얼려둔 옥수수를 찾으려 냉동실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갈 거니까 진통제를 먹지 않고 참았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잇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이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혼잣말을 하더니 다른 환자의 치아 사진을 보여주며 '이에 금이갔을 수도 있는데 엑스레이상에 안 보일 수 있다.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다 먹고도 아프면 신경치료를 해보고 그래도 아프면 발치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를 반복해서 3번이나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진단이 안 나오니 의사 선생님은 횡설수설했다며 머쓱해했고, 듣는 나는 이를 뽑아야 한다는 단어만 들렸다.
'온 김에 스케일링할까요?'물었다. '괜히 다 건드리지 말고 아프다는 곳만 하죠'
스케일링을 하던 치위생사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시 의사 선생님이 와서 하는 말.
'여기 보세요, 맞죠? 이에 금이갔어요. 뭐 딱딱한 거 안 드셔도 이에 금이 갈 수 있어요. 많이 썼잖아요. 다음 예약은 신경치료까지 생각해서 시간 넉넉하게 잡고 오세요. 신경치료해서 안 되면 발치까지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