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담 Nov 04. 2019

엄마의 잃어버린 기억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잘 자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맴맴 돕니다.

엄마가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 간직하던 토요일과 달리 어제는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전화 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엄마의 휴대폰 요금을  내가 부담하다 보니 나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월 100분짜리 요금제를 쓴다. 엄마는 통화 무제한이다. 내가 전화를 하고 끊으면 나중에 확인한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언니와 두 시간 가까이 통화하며 눈물 콧물을 쏟았고, 동생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동생과 통화하며 엉엉 울었다.


언니는 "너무 속상하다. 언니가 토요일에 끝나고 밤에 갈 테니 네가 호텔에 엄마 모시고 먼저 가있을래?" "며칠 전 통화할 때 KTX 못 타봤다고 말하던데, 엄마 기차여행 보내드려야 하나?" "우리만 호텔 가서 자면 아빠는?"

언니는 횡설수설 혼잣말을 했다.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듯 어제의 나처럼 조용히 말을 하는 언니......


"누나!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마음은 안 좋아. 운전하면서 내가 막 울 수도 없고 보건소 같이 갈 사람 아빠밖에 없으니 아빠한테 이야기해. "


그 뒤로 동생과 몇 번 더 통화를 했고, 엄마와 병원을 함께 갈 사람도 엄마를 돌볼 사람도 아빠밖에 없다는 현실과 마주쳤다.


지금 기분으로 엄마와 통화하면 울 것 같아 저녁을 먹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엄마에게 전화하고 끊었다. 다시 전화를 한 엄마는 "들깨 한말 사 왔는데 내일 날 좋으면 말려서  방앗간 가서 기름 짜 와야겠어. 맛있게 짜서 갖다 줄게 기다려."

엄마의 일상적인 말을 들으니 오늘 종일 운 게 억울했다.


치매라는 이름. 우리 엄마랑 너무 안 어울려. 아니야, 아니야.


"다희 엄마가 화장품을 줬는데, 너 갖다 써"

"엄마, 나는 화장 안 하니까 언니 줘. "

"초록색에 나무 그림 그려져 있고, 옻이라고 쓰여있다. 넌 싫다니 언니 오면 줘야겠다."

"엄마! 그거 저번 주에 아빠 쓰라고 내가 갖다 놓은 거잖아. 엄마, 내가 다음 주에 가서 아빠 거라고 크게 써놓을게."

"그러냐? 네가 가져온 거냐?"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셨는지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품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는 엄마.


단기 기억만 사라지나? 매실청을 냄비에 넣고 끓이다 넘쳐 가스가 막혀 쓰지 못하고, 수돗물을 틀어 놓는 건 괜찮다.

고지혈증, 협심증, 고혈압 등 매일 드시는 약이 많은데, 혹시 드신걸 잊고 또 드실까 걱정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아빠와 조용히 이야기를 해야겠다. 동생은 엄마가 들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엄마는 왼쪽 귀가 안 들려서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잘 못 들으신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에 있는 혹에 눌려 듣지를 못하신다.


아빠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더 이상 미뤘다가는 지금의 엄마의 모습마저도  빨리 잃어버릴 것 같다.


"엄마, 순대 드시고 싶다고 했지? 병천순대 인터넷으로 시켰으니 도착하면 떡 찌듯이 쪄서 드셔요" 했더니 "시장에 가서 사 먹는다 하면서도 안사지더라. 아이고, 순대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엄마.


내가 아끼는 통신비는 엄마의 간식비로 대체된다.


엄마, 잃어버린 기억만큼 다른 걸로 채워줄게.

사랑해 엄마.









작가의 이전글 너네 엄마 치매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